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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 피해자들은 왜 자신의 몸을 경멸해야만 했을까

  • 입력 2015.02.23 17:47
  • 수정 2015.02.23 17:50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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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2일은 구슬프게 비가 내렸다. 그 빗물만큼이나 많은 눈물이 뿌려지던 곳이 있었다. 서울 용산의 한 초등학교였다. 방학 때였고 아직은 이른 시간 오전 7시였지만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과 그 부모들까지 2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동장에 둘러서서 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이었다.




‘그렇게 일찍 떠나려고 그랬는지 예쁜 짓만 골라서 했던’ 열 한 살의 여자 아이는 나흘 전 비디오 가게에 가겠다고 길을 나선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포천에서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목에는 잔인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 범인은 곧 잡혔다. 인근 신발가게 주인이었다.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집행유예 중이었던 그는 여자 아이에게 못된 마음을 먹고 예쁜 신발을 보여 주며 공짜로 주겠다고 유인, 가게로 끌어들여 성추행을 하려다가 아이가 반항하자 그만 아이의 연약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일순 악마였던 사내는 그 욕망이 식은 뒤에는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돌변했다. 자기가 벌인 일 앞에서 겁이 난 이 미욱한 인간은 이번엔 제 새끼까지 범죄에 끌어들인다. 아들과 함께 시체를 불태운 후 유기한 것이다.


포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용의자


그들의 안도는 24시간을 지나지 못했다. 16시간 만에 시신이 발견됐고, 경찰은 동종 전과가 있는 신발 가게 주인에게 일찌감치 혐의점을 두고 수사를 시작했다. 결국 아들이 먼저 사실을 자백했고, 사실의 전모가 밝혀진다. 그렇게 2월 22일은 아이의 장례식이자 마지막 등교날이 되었다. 영정 속의 아이는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나흘 전만 해도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운동장과 친구들과 이별했다. 그때 봤던 뉴스 중 같은 반 아이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착하고 친구들에게 잘해 주고......" 아이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넘치는 울음을 막느라 잔뜩 찡그려진 얼굴의 아이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이상해졌어요. 아니 언제부턴가는 아닙니다. 그 일이 있은 뒤였지요. 애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하루는 집에 갔더니 애 엄마가 애를 미친 듯이 씻기고 있는 거예요. 나보고는 나가라고 악을 쓰면서...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애가 성폭행을 당했던 거였어요. 범인이 누군지도 몰라요. 신고해 봐야 소문만 나고 애한테 더 해롭다고 경찰에 알리지도 않았죠. 그런데 이상해진 거예요, 애도. 엄마도. 나한테도 주소를 알려 주지 않고 이사를 해 버리고... 천신만고 끝에 찾아가 봤더니 엄마가 애를 보여주질 않아요. 학교에도 안 보내고... 뿌리치고 들어가보니 다리가 퉁퉁 부은 채로 애가 서 있어요. 동생 말로는 며칠 동안 서 있는대요. 낙서를 보니 더러운 몸뚱아리 뭐 그렇게 써 있고."

남편의 주선으로 만난 아내의 눈에는 광기가 선했다. 애를 학교든 병원이든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애는 내가 알아서 합니다. 당신도 찾아오지 마."라고 내뱉던 엄마의 얼굴은 로봇처럼 굳어 있었다. 남편이 아내와 드잡이하는 사이 집 안에 들어섰을 때 몇 년이 가도 잊지 못할 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담요를 뒤집어 쓴 고등학생쯤 된 아이가 덜덜 떨며 서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말대로 얼마 동안 서 있었던 건지 다리가 퉁퉁 부은 채.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웅얼거림뿐.



제대로 위로 받지 못한 아이의 상처는 병이 되어 폭발했고, 그를 돌보는 엄마마저 제 정신이 아니게 만들었다. 남편에게조차 자식의 피해 사실을 숨기려던 엄마의 도피는 급기야 가족 전부의 감옥을 이루고 말았다. 자식을 누구보다 아꼈을 엄마지만 엄마가 자식을 위해 했던 행동들은 본의 아니게 최악의 연속이었다.

무턱대고 아이의 몸을 씻긴 것부터 피해자의 편이 되어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고 은폐하고자 했던 것까지, 아동 성범죄 피해자들이 지양해야 할 사례들을 정확하게 행했던 것이다. 지금도 당시 소녀를 유린했던 가해자는 자신이 한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제 정체를 모르는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자 위에서 한 소녀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 '더러운 몸'을 꾸짖고 있었고, 그 엄마는 자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지키려다가 미쳐 갔다.

예쁜 신발을 주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 끔찍한 손아귀로 걸어 들어갔던 열한 살 아이의 장례식이었던 2월 22일은 이후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로 지정됐다. 그러나 2년 뒤 안산에서 두 아이가 동네 아저씨에게 희생되었고, 또 어떤 아이는 조두순이라는 짐승에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만행을 당했다.


제2의 조두순으로 불린 영등포 초등학생 성폭행범 김수철. c 민중의소리

사건이 터졌을 때는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세월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아동 성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대책은 현실적으로 없다. 아무리 사악하고 더러운 인간이라도 그 권리의 무게는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을 범죄의 가능성 자체로부터 격리하는 것도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2월 22일.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

여기서 그것들을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는 말에만 핏대 올리지 말자. 나는 사형에 찬성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게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피해자를 어떻게 구원하는가다. 피해자를 돕는 시스템에 비하면 아무리 솜방망이 처벌일지언정 가해자 처벌 시스템이 더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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