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고객님 커피 준비되셨습니다 : 갑을전성시대의 어법

  • 입력 2016.10.17 16:37
  • 수정 2018.04.11 15:27
  • 기자명 309동1201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갑질’이라는 단어는 시대의 핵심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단면을 폭넓게 함의한다. 갑과 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대, 약육강식-적자생존-우승열패의 논리,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가 그것을 국가와 국가의 구도로 옮겨와 정당화했다면, 지금은 사회가 그것을 두 팔 벌려 끌어안은 모양새다. 억울하면 ‘갑’이 되면 되잖아, 하는 담론을 ‘을’이, ‘병’이, ‘정’이 앞장서서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제국이 아닌 식민지에서도 우승열패의 담론이 심화되었고, 자강론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나보다 뒤처지는 ‘야만’을 찾기 위해 열을 올렸다.


나는 서른 중반의 지방대학교 시간강사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동시에 맥도날드에서 냉동감자와 패티를 냉동고에 선입선출하고, 테이블을 닦고, 하수구 때를 벗긴다. 일을 하다 보면 어린 크루들이 카운터에 서서 ‘을’이 되어 ‘갑’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들은 불고기버거 금방 나오십니다, 커피 준비되셨습니다, 하고 쉴 새 없이 외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아프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의미론, 화용론, 통사론, 그리고 정서법과 표준어문법규정, 우리말본까지 공부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냉소와 함께 지적하고 있듯 커피 나오셨습니다, 하는 말은 커피를 높이는 엉망진창의 어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름대로는 문제될 게 없는 시대의 어법이라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

‘갑질’은 단순한 행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이미 내재화 되어 있다. 맥도날드 알바생이 불고기버거와 커피를 높임의 주체로 사용하고 있는 무식을 탓하면 안 된다. 그 무식을 하나의 사회적 어법으로 자리잡게 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다. 불고기버거는 인간 앞에 자리잡을 수 없는 하찮은 식재료이지만, 그것이 ‘갑’의 소유가 되는 순간 ‘갑>불고기버거>을’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급격히 마련된다. ‘을’의 입장에서 알바생은 이미 ‘갑’의 소유가 되었거나 될 예정인 어떤 물건에 대해 존대할 수밖에 없다. ‘갑을 전성시대’의 새로운 압존법이다.

‘그래, 당신의 소유물마저 높여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갑이고 나는 을이니까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는 동정이다. 단순히 어떤 대상을 측은히,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값싼 동정’에 불과하다. 불과 한 세기 전, 동정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번역될 때 우리 지식인들은 그를 두고 어떤 타자의 처지를 깊이 공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공감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동정론’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왜 맥도날드의 알바생들이 커피 나오셨습니다, 하고 어떤 위화감 없이 소리 높여 갑을 찾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어법이 왜 그렇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어법에 냉소를 보낸 바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갑질’의 주체다. 나 역시 철저한 ‘을’의 입장에서 노동해 보지 않았다면 그저 강의실에서 그들의 한심함을 조롱하고 있었을 것이다.




21세기의 ‘동정’은 20세기 초의 ‘동정’보다도 못하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피해 주체에 책임을 덧씌우는 값싼 동정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많이 아프지, 네 잘못이 아니야, 함께 바꾸어 나가자’하는 발화는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