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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판사 솜방망이 처벌엔 이유가 있다

  • 입력 2015.02.11 14:07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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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판사가 있다. 바로 수원지법 최민호 판사(연수원 31기)다. 지난 2010년 3월 '명동 사채왕' 최 씨는 입원해 있던 최 판사를 찾아가 자신의 형사사건의 담당 수사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1,000만 원을 건넸다.


c MBC 뉴스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최 판사는 2011년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청탁을 받으며 현금 1억 원을 받았다. 물론 갑자기 병원으로 찾아온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넙죽 받았다는 건 다소 의아한 일이다. 잽싸게 돈을 놓고 가는 바람에 돌려줄 수 없었을까? 최 판사는 2009년에 총 1억 5,864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명동 사채왕'과 최 판사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깊을지도 모르겠다.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최 판사에게 징계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영일 대법관)은 최 판사에 대한 심의기일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역대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 왜 이런 징계는 항상 '비공개'로 이뤄지는 것일까? 아래는 <연합뉴스> 기사의 제목을 보자.

사채왕 판사 사건 '금품수수' 최민호 판사 정직 1년..역대 최고수위

'역대 최고 수위'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최 판사가 받은 징계는 고작 '정직 1년'이었다. 물론 <연합뉴스>의 보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법관에 대한 징계를 규정하고 있는 '법관징계법'에 따르면,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은 정직·감봉·견책의 세 종류로 되어 있고, 정직은 1개월 이상 1년 이하로 정해져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법관징계위원회가 내린 징계 중 정직 10개월을 초과하는 중징계(?)는 없었다. 따라서 <연합뉴스>가 뽑은 '역대 최고 수위'라는 제목은 씁쓸한 사실이다.


c 민중의소리


우리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놀랄 수밖에 없다. 첫 번째는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의 최고 수위가 고작 정직 1년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껏 (법관에 대해서) 정직 10개월을 초과하는 중징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헌법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등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제106조 제1항)'는 조항을 통해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 판사 이전까지 내려진 중징계가 고작 정직 10개월에 그쳤던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과연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을 규정하고 있는 법관징계법은 어떤 규정들로 이뤄져 있을까? 또, 법관의 징계를 결정하는 법관징계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역시 법조문을 들여다보면 된다.

법관징계법
제3조(징계처분의 종류)
①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은 정직·감봉·견책의 세 종류로 한다.
② 정직은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기간 동안 직무집행을 정지하고, 그 기간 동안 보수를 지급하지 아니한다.
③ 감봉은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기간 동안 보수의 3분의 1 이하를 줄인다.
④ 견책은 징계 사유에 관하여 서면으로 훈계한다.

제4조(법관징계위원회)
① 법관에 대한 징계사건을 심의·결정하기 위하여 대법원에 법관징계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위원 6명으로 구성하고, 예비위원 3명을 둔다.

제5조(위원장 및 위원)
① 위원회의 위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위원은 법관 3명과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 중 각 1명을 대법원장이 각각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1. 변호사
2. 법학교수
3. 그 밖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② 예비위원은 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③ 위원장·위원 및 예비위원의 임기는 각각 3년으로 한다.
④ 위원장은 위원회의 사무를 총괄하고 회의를 소집하며, 의결할 때 표결권을 가진다.
⑤ 위원장에게 제10조에 따른 사유 등으로 그 사무를 처리하지 못할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위원이 그 직무를 대리하고, 위원에게 같은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원장이 지명하는 예비위원이 그 직무를 대리한다.


아니나 다를까?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법관징계위원회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게 운영되고 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법관징계위원회는 위원장과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고, 6명의 위원 중 절반인 3명은 법관으로 채워진다. 총 7명 중 4명이 '제 식구'인 법관인 것이다.




'외부위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머지 3명은 '변호사', '법학교수', '그 밖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임명하거나 위촉하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앉혀질지는 뻔한 것 아니겠는가. 설령 강성인 사람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헤럴드경제>는 지난 1995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관보에 게재된 법관들의 징계 내용을 확인했는데, 견책(5명), 감봉 2개월(2명), 정직 2개월(2명), 정직 5개월(1명), 정직 6개월(3명), 정직 10개월(3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미 법관징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 살펴봤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측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고 수위라고 하는 정직 1년이 법관들에게 정말 '무서운' 징계일까? 일반 회사원이나 하위직 공무원에게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아찔한' 징계일 수 있겠지만, 법관들에게는 그저 '안식년' 정도로 여겨진다고 한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복귀하거나 유학을 떠나 부족했던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배알이 꼬이면 사표를 던지면 그만 아닌가.

비리를 저지른 법관에 대한 징계를 '국민의 눈높이'로 맞추기 위해서는 약하기 그지없는 징계 수위부터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법관징계위원회의 과반수를 비(非)법조인으로 구성하고, 위원장도 그 중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꿔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은 어김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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