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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손주 키우는 게 '도덕적 해이'라고?

  • 입력 2015.01.29 11:16
  • 기자명 잡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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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아이 안 맡기면 손해보는 정책

보육료 차별지원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에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c 민중의소리


그동안 새누리당과 정부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들과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이들을 심각하게 차별해 왔습니다.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가 직접 돌보는 아이들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할머니나 외할머니 혹은 이모나 고모 같은 친척들이 돌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린이집 보육시간이 부모의 근무 시간과 잘 맞지 않는다든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든지, 아토피, 천식과 같은 병을 앓고 있어 어린이집을 못 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또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아이들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적응하기 어려워 기피하곤 합니다.

친인척이 돌봐줄 수 없는 경우에도 어린이집 대신에 개인탁아를 하는 분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부모의 근무 시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혹은 부모를 대신해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탁아모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정부가 만든 현재의 보육료 지원 정책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던 아이들뿐만 아니라 탁아모가 돌보던 아이들도, 심지어 건강 문제로 어린이집 생활이 힘든 아이들까지 모두 어린이집에 몰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 어린이집에 돈을 쏟아 붓는 게 보육 인프라 구축인가

그 핵심은 바로 차별적인 지원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들은 최고 75만 5,000원을 지원하면서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는 아이들 그리고 탁아모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에는 최고 20만 원밖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이번 인천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이후에 정부가 보육정책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양육수당'을 늘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직접 양육하거나 어린이집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탁아'를 희망하는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보낼지 말지는 양육자가 선택할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린이집 이용 여부를 기준으로 차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신문 기사를 보면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도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차별 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양육수당'을 기본적인 아동복지로 본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겨레>에서 공주대학교 교수를 인터뷰하였는데, "아동 권리 관점에서 소득에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게 필요하다.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하였더군요.

하지만 정부가 현금 지원을 강화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있더군요. 그들 주장은 "개인한테 수당으로 주면 보육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으며 부모들이 그 돈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쓰지 않고 다른 데 쓸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더군요.

양육수당 받아서 할머니에게 맡기면 도덕적 해이입니까?
양육수당 받아서 이모, 고모에게 애 맡기면 도덕적 해이입니까?
양육수당 받아서 이웃 아주머니에게 애 맡기면 도덕적 해이입니까?

‘도덕적 해이’ 타령하는 전문가들의 이런 주장에는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개인한테 주는 양육수당을 늘이면 보육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민간 어린이집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게 보육 인프라 구축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양육수당을 줄인 돈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인다면 그나마 보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예산을 투입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보육료 지원금의 대부분을 민간 어린이집에 쏟아 붓는 상황에서 '보육 인프라 구축'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간 어린이집이 지금처럼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육 인프라 구축'을 민간에 의존하였기 때문입니다.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개인 돈을 투자하여 '인프라 구축'을 하였고, 정부 지원은 그 인프라 구축에 대한 보상(?)금 성격이 짙습니다.

이미 보육 인프라는 양적으로는 충분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어린이집 숫자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어린이집 숫자가 모자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보육 인프라 구축은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만으론 결코 질을 높일 수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장기적 비전 없는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보육료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둘째로 '부모의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불신주의에 기반하는 큰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육수당은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처럼 국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차별하지 않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양육수당을 받아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것'을 범죄 시 하거나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양육수당을 받은 부모들이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여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이모나 고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양육비를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이웃의 믿을 만한 아주머니를 찾아 개인 탁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양육 수당을 지출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육수당을 받아 옷을 사 입힐 수도 있고, 분유값으로 쓸 수 있는 겁니다. 양육수당을 받아서 어린이집 보육료로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좁은 소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 원장은 믿지만 아이 부모는 못 믿겠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나 할머니가 돌보는 아이나 차별 없이 보육료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정부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받은 돈으로 어린이집에 다니는 할머니나 친척들에게 맡기든 부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은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 1명당 70만 원이 넘는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양육수당은 똑같이 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논리이지요.

끊임없이 부정 행위가 발생하였는데도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믿기 때문에 정부지원금을 쏟아 부으면서 양육 수당을 다른 데 쓸까 봐 아이 부모에게는 직접 못 주겠다는 정부관료와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은 백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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