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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허경영의 공약 변천사

  • 입력 2014.12.06 18:38
  • 수정 2014.12.06 19:06
  • 기자명 욕먹는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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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검색어에 낯익은 이름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허경영. 올해 초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19대 대선 공약이 재조명 받고 있다. 기레기들이 '그의 대선 공약에 네티즌들은 황당하지만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를 양산해 내며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씁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때는 2009년, 당시 예술대학 간부로 일하던 친구가 허경영을 섭외했다며 자랑한 적이 있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던, 평소 신뢰하던 친구였던 터라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다. 그 친구는 허경영을 연예인 정도로 치부했다. 부모가 힘들게 벌어서 내준 등록금의 일부가 사기꾼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허경영의 대선 공약들을 살펴보기 전에 한마디만 하자면, 그에게 환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결국 사기꾼일 뿐이다. 실제로 허경영에게 후원금을 뜯긴 피해자들도 많다. '상식적으로 저런 말을 믿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신이라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믿기도 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의 환호가 사기꾼의 신뢰도를 높여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허경영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엉뚱한 후보로 네티즌의 조명을 받았다. 각종 파격적인 공약들과 축지법, 공중부양 등 기괴한 주장들이 큰 반향을 얻어낸 것이다. 허경영이 깜짝 등장한 인물은 아니다. 1987년 신민당(김대중·김영삼과 관계 없는 이름만 신민당)의 부총재를 지낸 그는 13·14대 대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지만 기탁금 때문에 포기한다. 이후 15대 대선에 출마했다. 당시 주요 공약을 살펴보자.


허경영의 15대 대선 벽보. c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요 공약>
1. 정치혁명 : 국회의원 제도 폐지, 남녀 동수의 직능국회의원 실시
2. 조세혁명 : 직접세를 폐지, 간접세로 전환
3. 교육혁명 : 대학명칭 폐지, 대학 지망자 전원 입학
4. 정신혁명 : 대통령명칭 폐지, 국민대표로 변경
5. 국방혁명 : 핵주권, 미사일주권 회복
6. 도덕혁명 : 조선왕조 부활
7. 환경혁명 : 담배생산판매 금지
8. 행정혁명 : 경기도를 서울 특별시로 합병
9. 경제혁명 : 중소기업 무담보 장기저리융자
10. 복지혁명 : 실업자 취직 국가 책임제


황당함의 정도로 따지면 화제가 된 17대 대선 공약보다 더하다. 하지만 크게 이슈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17대 대선에 출마한 그에게 네티즌들은 환호했다. 네티즌은 그를 '허본좌'라 칭했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된다. 첫째, 인터넷의 발달로 하위 문화를 영위하는 층의 유머 코드와 맞았다. 둘째, 정치 불신이 냉소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명박의 독주로 싱겁게 끝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63%, 역대 최저치다.


허경영의 17대 대선 벽보. c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요 공약>
1. 60세 이상 노인에게 70만 원의 건국수당 지급
2. 결혼 시 남녀 각 5,000만 원 국가에서 지원
3. 출산 시 양육비 지원 3,000만 원
4. 학생들을 시험에서 해방
- 수능폐지, 내신제폐지, 고교평준화폐지
5. 국회의원 의석 조정, 각종 예산낭비성 선거 폐지
- 국회의원 100명 무보수 명예직, 지자체의원 4,000여 명 무보수 명예직
6. 모든 세금을 소비세 한 가지로
- 전기, 전화, 수도, 가스, 핸드폰 요금을 각각 5만 원까지는 무상으로 공급
- 직접세를 모두 간접세로 바꾸어 결국 소비를 많이 하는 부유층이 세금을 더 많이 냄
- 토지세, 재산세, 종토세, 상속세, 양도세 등 폐지로 상류층도 혜택을 많이 봄
7. 실업문제 해결과 중소기업 육성
- 국민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허경영뉴딜정책 즉 산삼뉴딜과 새마을뉴딜 실시
- 1,000만 실업자의 일자리 창출
- 중소기업 종사 젊은이들 월 100만 원의 생필품쿠폰 지원
- 중소기업 5년 이상 근무 시 3억 원의 무담보·무보증·무이자의 창업자금 지원
8. 정당제도 폐지
- 무정당·무국경·무차별의 중산주의 시대가 한반도부터 실시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
9.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하여 안보와 경제를 살림
10. 수도 확대와 경제부양책
- 경기도 전체를 서울특별시로 확대
- 미래 아시아연방통일을 준비하며 새만금에 10,000여 개의 은행을 유치
- 새만금, 목포, 광주, 여수, 광양, 진해, 부산을 잇는 호남남해안 관광벨트 개발
- 세계 제1의 금융도시와 관광벨트로 국민소득 5만불 시대를 열어갈 것
11. 신용불량자 전원 구제
12. 사생활 보호 및 청소년 보호
- 국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과와 이혼 기록을 모두 호적에서 삭제하는 대사면 실시
13. IMF 어음 피해자 구제대책
- 어음보험공사를 설립
14. 네트워크 기업 보험제 도입
15. 상속세 폐지로 국내기업 경영권 방어
- 상속세를 폐지, 국내기업의 지분을 노리는 외국거대자본으로부터 한국대기업을 지킴
16. 금융실명제 폐지
-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폐지하여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국내자금유출을 방지
17. 화폐디자인 변경
- 화폐변경을 실시하여 지하자금 900조를 회수
18. 국가 유공자 보상
- 6.25, 월남참전용사에게 3억 원 지급과 매월 30만 원 수당 지급
- 군 징병제도를 점차적으로 폐지, 모병제 전환
- 기술첨단 군대로 개편하며, 예비군 훈련은 폐지하고 편성은 그대로 유지
19. 장애인 권리향상
20. 급식제도 개혁
- 친환경 제품으로 끼니당 약 3,000원의 공급가로 국가가 100% 부담


허경영의 발언을 지지하는 네티즌들도 대부분은 그를 황당한 연예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일부는 진심으로 그를 지지하기도 한다. 설상가상 모병제 전환, 무상급식 등의 의제를 허경영이 먼저 주장했는데 기존 정치권에서 그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가고 은근슬쩍 공약을 가로채갔다고 믿기도 한다. 축지법, 아이큐 430 등의 허황된 주장을 미루어보아 그는 허언증 환자가 맞다. 그리고 모병제 전환, 무상급식 등은 진보진영에서 오래 전부터 고민해 만들어 온 의제였다. 실현에 대한 고민 없이 내놓은 공약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자칭 인터넷 대통령 본좌 허경영


UN 본부 이전과 같은 허황된 주장이 더 부각되었지만, 필자는 경제 공약이라 내놓은 것을 집중해 봐야 한다고 본다. 직접세를 거두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두 간접세로 돌리면 소비를 많이 하는 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높아진다고 한다. 조금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을 것이다. 간접세의 비중이 높을수록 소득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극심해 질 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토지세, 재산세, 종토세, 상속세, 양도세 등의 폐지로 상류층에 혜택을 주겠다고도 한다. 세수가 줄어들 것은 뻔해 보이는데 결혼하면 남녀 각 5,000만 원, 출산양육비 3,000만 원, 참전용사 3억+월 30만 원, 건국수당 월 60만 원 지급, 무상 급식, 모병제 전환, 중소기업 지원 등 솔깃하지만 재정 계산이 빠진 공약을 내세웠다. 머쓱했는지 화폐 개혁을 통해 900조에 달하는 지하자금을 회수한다고 한다. 허경영의 공약을 복지공약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19대 대선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자신의 발언에 환호하는 타겟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허경영의 19대 대선 공약. c 허경영 페이스북

<주요 공약>
1. 이명박 구속(사랑의 열매 1조 기부 시 면책)
2.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결혼 승낙 시 면책)
3. 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소록도 봉사 5년 시 집행유예)
4.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5.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 원씩 지급(어버이 연합 제외)
6.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 원 지급(재혼시 1/2지급, 삼혼시 1/3)
7. 출산수당 출산 시마다 3,000만 원 지급
8.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 국회의원 1/3로 감원
9. 정당정치 해산하고 국회의원들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10. 몽골과 국가 연합
11. 바이칼 호수 서울시 공급
12. 만주땅 국고 환수
13. 독도 간척사업으로 일본 근해 500미터 앞까지 영토 확장


허경영이 19대 대선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의 핵심은 1~3번이다. 이명박 구속,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이 상상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네티즌의 환호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 해도 이명박근혜 정권을 심판하지 못할 것이라는 '야권의 무능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승낙 시 면책이란 구절은 화제가 되길 바라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환호해선 안 된다. 17대와 19대 공약을 봤을 때 확실한 것은 그는 듣고 싶어하는 말을 들려줄 줄 아는 사기꾼이다. 그는 광대가 아니다. 현 정치 체제를 조롱하는 광대인 척하면서 결국 누군가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유명세를 구걸하는 사기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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