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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찌라시인가 선전지인가

  • 입력 2014.12.05 14:35
  • 수정 2014.12.05 15:18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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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를 그대로 쓰는 매체는 온·오프라인, 보수·진보지의 구별이 따로 없다.

바야흐로 ‘찌라시’ 전성시대다. 찌라시는 원래 일본말로 우리나라에선 ‘선전지’로 순화해 쓰지만, 정작 이 말이 쓰이는 상황은 좀 색다르다. 찌라시는 ‘값싸다’, ‘무가치하다’는 뜻에서부터 ‘믿을 수 없는 유언비어’까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찌라시'? 값싸거나 믿을 수 없거나!

내가 아는 바로는 ‘찌라시’가 본래의 의미 이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안티조선’ 운동이 펼쳐질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조선일보>가 보여준 저급한 편향적 보도행태에 주목하면서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찌라시’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요즘은 극우세력들이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 것 같다.)

찌라시가 다시 조명 받은 것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비밀 누설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 천기를 누설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그 회의록의 내용을 ‘찌라시 형태로 된 문건’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변명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조롱을 받았지만 검찰은 그를 무혐의 처리함으로써 진실은 끝내 말끔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최근 찌라시가 다시 뜨거운 뉴스로 떠오른 것은 대통령의 비선과 관련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국정농단 의혹 덕분이다. 청와대 측은 문제의 문건을 가리켜 ‘찌라시’라 했고, 보수 일간지의 논설위원도 ‘딱 그 수준’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이 의혹은 ‘찌라시’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이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한 것은 그 내용의 신빙성, 진실성이 없다는 뜻이겠다. 예의 문건에 담긴 내용이 진실한지 어떤지 여부야 정치권에서 밝힐 일이다. 그러나 그 진실성을 다투면서 정치권은 물론,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조차 ‘찌라시’ 타령을 계속하는 건 좀 거시기하다. 비록 따옴표로 인용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치인들이 즐겨 쓰거나 정치 보도에서 쓰이는 일본말. c 국립국어원의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


언론이 국민들의 바른 국어생활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냥 ‘선전지’라고 쓰는 것과 ‘찌라시’라고 쓰는 것의 뉘앙스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순화가 필요한 일본말이나 일본말투를 무심히 쓰는 것은 독자들의 언어생활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매체들이 ‘찌라시’라고 쓰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일본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지라시’로 올라가 있다. 사전은 지라시를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 ‘낱장 광고’, ‘선전지’로 순화”라 풀이한다. 한때 ‘전단(傳單)’으로 쓰기도 했지만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낱장 광고’, ‘선전지’로 순화한 것이다.

유독 정치권에서만 순화어가 잘 쓰이지 않는다. 원말의 뉘앙스 운운하지만, 모든 낱말의 뉘앙스는 제각기 그만그만하지 않은가. ‘낱장 광고’라거나 ‘선전지’라고 해서 ‘지라시’의 뜻이 살아 있지 않다고 규정할 까닭은 없다는 얘기다. 언제쯤, ‘나와바리’(구역의 뜻)와 같은 일본말이 정치 보도에서 사라지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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