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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세가 저출산 해결의 열쇠라고?

  • 입력 2014.12.02 13:48
  • 수정 2014.12.02 18:12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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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 네 생각은 어때?
"뭘요?"
"결혼에 대한 가치관 말이야."
"전 계약직인데요?
<미생> 제14국 中


tvN <미생>(극본 정윤정·연출 김원석·원작 윤태호) 제14국에서는 계약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비애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드라마에서는 지나가는 장면으로 짧게 다뤄졌지만, '이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선을 봤던 여성에게 퇴짜를 맞은 김동식 대리와 불려 나온 장그래, 덩달아 나온 하 선생의 술자리 대화 장면은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c tvN


청년 세대답게 세 사람은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장그래, 네 생각은 어때?" 김 대리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묻자 장그래는 "전 계약직인데요?"라고 답한다. 현답도 이런 현답이 없다. '파리 목숨에 불과한 계약직 따위가 결혼을 생각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장그래의 반문은 현실을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대답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의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불안정한 계약직 삶에 결혼은 그야말로 사치다. 설령 결혼을 했더라도 출산이라는 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에서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지만 피부로 와 닿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 생명을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에 내보낸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예의 삶, 그 비참한 굴레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여전히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이러한 현실을 몸소 체험했던 청년 세대는 'NO 출산', 'NO 결혼'을 외치고 있다. 어디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저출산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에서는 '싱글세' 이야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한편, 야당은 '신혼부부 임대주택'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치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해와 바람이 내기를 했던 우화를 떠올리게끔 한다. 결혼(출산)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내게 해서 부담을 가중시키겠다는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싱글세보다는 당근을 제시하는 신혼부부 임대주택이 훨씬 나은 정책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두 가지 정책 모두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고 보기엔 어렵다.

지난 12일, 한 언론이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싱글세와 같은 패널티 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이른 바 '싱글세 논란'이 촉발됐다. 물론 복지부에서는 "싱글세 등과 같이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전략상 후퇴를 하긴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LG경제연구원의 <저출산시대의 경제 트렌드와 극복방안>. c JTBC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저출산에 대한 대책으로 '독신세'가 언급된 적이 있었다. 지난 2005년 LG경제연구원이 '저출산시대의 경제 트렌드와 극복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독신세'를 언급했고 정부 고위층에서 독신세를 좀 매기면 사람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 않겠느냐며 가볍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9년이 지났지만 그래 봤자 관료 사회는 관료 사회다. 그 관료가 그 관료이고 만들어 두었던 해법(?)들은 유행처럼 반복된다. 이름 등 약간의 수정을 거친 채 말이다.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농담처럼 오간 말들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인구보건협회가 '전국 대학생 인구토론대회'를 개최하면서 ‘싱글세 도입’을 토론주제 3가지 중 하나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4인 가구와 싱글의 소득세 및 지방소득세 비교. c JTBC


어처구니 없는 싱글세에 대한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게다가 이미 싱글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소득 공제 시스템이 애초부터 가족 중심으로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싱글은 공제를 거의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국 싱글들은 이미 싱글세를 충분히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싱글세 논란에 대해 경기개발연구원 소속의 김은경 박사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가 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지를 생각해 보면, 사실 가장 큰 문제가 비용 문제 아니겠습니까. 논쟁이 되고 있는 무상 보육도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 우리가 0~5세까지의 보육을 국가에서 지원을 해 준다는 거였는데 몇 년 동안 시행되었음에도 출산율이 작년 기준 1.187(명) 정도 나왔지 않습니까.

그 동안 재정을 넣었는데도 효과가 없다면 이게 5세까지 보육 지원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 과외까지 받는 상황에서 자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 때문에 아이를 못 낳고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여성이 취업을 해도 사실 가정과 일이 양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세금 매긴다고 ‘돈을 내거나 아이를 낳거나’ 택일하게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 '싱글세? 이미 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실제로 셋째 아이를 낳으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그것이 출산율을 대폭 늘리지는 못했다. 교육비 등의 실질적인 부담과 워킹맘들이 겪는 고충 등도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자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일자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는 계약직인데요?"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교리처럼 여기는 친기업 정부가 이끌어 온 노동 정책들은 결국 청년 세대를 비롯해 전 세대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야당의 '신혼부부 임대주택' 정책은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홍종학 의원은 "신혼부부에게 결혼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출산을 촉진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제공하자."고 주장하면서 2015년부터 신혼부부에게 3만 호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장기적으로는 10년 동안 매년 10만 호의 임대주책을 공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새누리당의 공세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애초에 '신혼부부에 집 1채'라는 문구로 정책을 홍보한 것이 화근이었다. 새누리당은 "'신혼부부에 집 1채'를 문구로 해 누가 봐도 모든 신혼부부에게 집을 공짜로 줄 것처럼 선전했던 새정치연합이 인제 와서 공짜가 아니라 임대료를 받겠다고 한다."는 수준 낮은 정치적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c tvN


결론은 '싱글세'도 아니고 '신혼부부 임대주택'도 아니다. 이는 저출산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저출산은 두 가지 시각으로 나눠서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는 결혼을 기피하면서 자연스레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고 두 번째는 결혼은 하되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경기개발연구원 소속의 김은경 박사의 이야기처럼 '가정과 일이 양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을 바꿔야만 해결되는 문제다.

물론 현실도 미래도 암담하다. 육아휴직은커녕 간호사 5명 중 1명이 '임신순번제'를 당연시 받아들이는 현실 속에서 출산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만 하다. 워킹맘이 직장에서 받아야 하는 따가운 눈총만 생각해 보아도 과연 대한민국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대 미혼남녀의 30.3%가 '결혼은 사치'라고 말했고 그 중 44.7%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저출산의 가장 주된 원인인 결혼 기피는 결국 '일자리 문제'로 귀결된다. 사실 저출산 외에도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 문제'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20~30대 미혼남녀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 c JTBC


최경환 경제 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에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지난 24일에는 기획재정부 이찬우 경제정책국장이 "고용의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을 향했던 칼날이 곧 정규직을 향할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계약직(비정규직)은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예측 가능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인생을 결정할 결혼은 어떠하겠는가. "전 계약직인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안정화가 정답이다. 저출산 문제를 풀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꿈을 가질 수 있는 욕심을 허용하라. 당장 내일이 아니라 내년을, 10년 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하라. 미래라는 단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현실'을 제공하라. 협박도 아니고 당근도 아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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