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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21일 원조 조폭 장군의 아들 떠나다

  • 입력 2014.11.21 11:55
  • 수정 2014.11.21 15:14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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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임권택 감독이 배우 신현준을 두고 "<장군의 아들> 시절 하야시 역을 맡은 신현준이 일본어를 못해서 징징 울었다."고 회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매서운 눈빛에 검은 하오리를 걸쳤던 그 양아치 두목이 '하야시' 신현준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신현준은 그렇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가 없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맞수였던 하야시, 종로를 장악한 김두한과 겨뤘던 명동패거리 두목 하야시는 사실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처럼 김두한과 앙숙 관계도 아니었다. 충돌도 있었지만 대개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김두한과 이권을 나누기도 했다. 세상사 대부분이 그렇듯 알려진 바와 그 속내는 다르기 마련이지만 김두한의 경우는 그 간극이 매우 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일단은 '장군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부터가 논란의 대상이다. 물론 김좌진의 어머니와 본처까지도 김두한을 김좌진의 아들로 인정하고, 안동 김씨 족보에도 올라 있는 마당에 그가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고 우길 만한 증거는 없다. 그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김두한 본인이다.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으니 자신의 양할아버지는 김옥균이라고 주장한 것도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김두한만 알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시간적 배경도 뒤죽박죽이니 지금 이 양반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참말을 하는 건지조차 헛갈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장면.

분명한 것은 그는 깡패였다. 협객이니 야인이니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깡패였다.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면 암흑가 두목 쌍칼이 독립군이 되기 위해 만주로 떠나려는 김두한에게 "종로의 상권을 지키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상권을 지켜주는 대가로 상납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유구한, 조폭이라는 이름의 양아치들의 생존 방식이다. 드라마 <야인시대>가 인기를 끌 무렵, 김두한의 후배 야인(?)들이 제작 현장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그 야인들 가운데는 70년대 명동을 장악했던 '신상사파'의 두목 신창현도 있었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김태촌, 조양은 등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게 된다. 결국 김두한은 깡패였다.

그는 깡패답게 단순하고 잔인했다. 그가 좌익세가 우세하던 국군준비대를 습격하여 1,300명을 죽였다고 떠든 것은 단연코 허풍이지만, 전평 파업 당시 파업 대오가 있던 용산역을 습격, '죽창으로 전평(좌익의 전국노동자평의회) 대원을 죽이고 묻은' 것은 사실이었고 46년 10.1 대구 봉기 때는 청년단을 이끌고 대구로 가서 악명을 떨쳤다. 그는 어려서부터 절친한 친구였으며 좌익 쪽의 주먹이었던 정진영까지 살해하고 만다. 살인극을 일삼다가 미국 군정에 체포된 그는 사형을 선고받지만 장택상 등의 비호로 살아남는다.

머리는 비상했다고 하지만 그 비상함을 가려버릴 만큼 단순한 성품이었던 그는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로 알았고 우익들은 김두한이 칼을 휘두르고 죽창을 쑤시고 돌아오면 "김 동지! 당신이 나라를 구했소!" 하며 그 단순 무식 과격한 깡패의 기를 돋궈 놓았다. 이는 그 후 정치인들이 깡패들을 동원할 때 "나라 위해 큰일을 해 보지 않겠나?"라고 회유하는 그 방식 그대로다. 볼짱다본 깡패들이 헌신짝처럼 버림받는 것도 당연한 과정인데, 김두한도 그랬다. 칭찬을 기대하며 이승만에게 불려간 그는 "사람 좀 그만 죽이게." 하는 핀잔을 듣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칼자루를 쥔 손이 칼더러 "피 그만 봐라."고 다그치는 격이었으니 오죽했으랴.




전쟁 이후 그의 우직함은 150도(180도까지는 아니니)로 바뀌어 빛을 발한다. 김두한은 "나는 무식하다. 하지만 인생은 영원한 미완성이 아닌가." 하는 너무나 솔직한 유세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당선 3일 만에 감옥에 갇힌다. 이승만 정권을 선거운동 도중 정면으로 비판한 괘씸죄에 걸렸던 것이다. 정계에 발을 디딘 후 그의 행적 역시 '김두한스러운' 것이었다.

적어도 국회 단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데리고 있는 측근자들은 모두가 일제 관료출신들이니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의 보스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놈의 경찰 밀정 해먹던 놈, 민족반역자 친일파를 두둔하여 독재의 성을 쌓고 아부 잘하고 간계 잘 부리는 악질 간성모리배들만 살찌우고 있으니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두목은 이승만 대통령이다."고 속 시원하게 퍼부은 사람은 김두한밖에 없었고, 정부 관료에게 똥물을 퍼부으며 성토했던 행동 역시 '깡패' 김두한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조악하고 거칠었지만 결코 야비하지 않았다."는 전 통일부총리 권오기의 회고는 그의 삶을 잘 표현한 듯싶다. 노동자들의 파업 대오를 습격하여 주변에 기름을 붓고 태워 죽인다고 협박하여 주동자를 가려 내고 그들을 죽창으로 꿰뚫어버린 잔인함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칼자루 쥔 손에 휘둘리는 칼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눈깜짝 않고 '생화장'을 시켰던 냉혈한이지만 독립 지사 연금을 통째로 보육원에 갖다 맡기기도 했고, 이념이 갈린 죽마고우를 때려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고학생을 만나면 입고 있던 양복을 훌러덩 벗어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던 큰형같은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 현대사의 질풍에 휘말려 버린, 그리 생각은 깊지 못했으나 비열하게 머리를 쓰는 법 또한 알지 못했던 한 사내가 1972년 11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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