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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지만, 나를 팝니다' 남구로 인력시장의 풍경

  • 입력 2014.10.22 12:22
  • 수정 2014.10.22 13:54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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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0분, 시장이 열린다. 특이한 '상품'이 팔린다. 새벽 농산물 시장처럼 죽어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벽 수산물 시장처럼 '상품'이 수조에 갇혀 있지도 않다. 이 곳의 '상품'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살아 있다. 말도 할 수 있으며, 생각도 가능하다.

여기는 남구로 인력시장이다.

남구로 인력시장 전경 ⓒ고함 20

남구로역 2번 출구를 나와서 뒤돌아 걸으면 인력시장이 펼쳐진다. 길거리엔 사람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군복 바지와 등산용 조끼를 입었다. 비슷한 모습이다. 길 한쪽에는 이들을 실어 건설현장으로 나르는 봉고차가 빽빽하게 세워져 있다. 봉고차를 지나 걸어가면 밥 차가 나온다. 밥 차의 트렁크를 열고 파란색 간이 식탁을 펼치면, 여기가 아침밥을 해결하는 주방이자 식당이 된다.

남구로 인력시장 밥차 앞 ⓒ고함 20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밥차'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아무나 와서 수저를 들면 아침밥을 내어준다. 밥차의 주메뉴는 국밥이다. 5년째 밥차를 애용한다는 김한구(48•가명)씨는 “오늘 김칫국 같은 국물류가 단골이다. 육개장이 제일 많이 나오고 설 같은 특별한 날엔 떡국이 나온다. 여름이라도 새벽에는 항상 추워서 국물이 좋다. 그리고 후루룩 빨리 먹을 수 있어 일에 가기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밥차는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집에서 가져온 냄비에 부어주거나, 냄비가 없으면 검은 봉지에라도 담아준다. 새벽에 나와 밥을 달라는 사람은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못먹기에, 테이크아웃을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남들도 먹어야 하기에 큰 국자로 딱 한 번만 퍼준다.

밥 차 근처에서 검정 조끼에 빛바랜 검정 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손짓한다. 한 숟가락 뜨고 가라고 말한다. 올해 56세를 넘은 까무잡잡한 아저씨는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름을 알고 싶어 식탁에 마주 앉아 국밥도 같이 먹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에 별명이 ‘깜시’라고 했다. “여기선 이름이 필요 없다. 대신 별명을 많이 부른다. 나는 검은색 옷을 자주 입어서 ‘깜시’고 저 사람은 허리가 굽어서 ‘곱추’, 발이 크면 ‘왕발’ 그나마도 특징도 없으면 그냥 '김씨' 이런 식으로 부른다”라고 말했다.

ⓒ고함 20

밥 차를 지나쳐 걸어가면 인력사무소가 건물마다 있다. 인력사무소는 공사현장과 사람을 연결한다. 사람들은 오자마자 인력사무소에 제일 먼저 들린다. 오늘 하루 공치는지 아닌지는 이곳 인력사무소에서 판가름난다. 그래서 사무소 안은 길거리보다 사람이 많고, 긴장감도 느껴진다.

건물 층마다 인력사무소가 있다 ⓒ고함20

일을 구하러 인력사무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민등록증부터 내민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들을 수 있다. "김민수 씨 가능해요?"라고 사무소 직원이 물어보면, "할 수 있다"고 대답한뒤 바로 봉고차에 올라탄다. 뒤이어 수많은 이름이 불러진다. 이곳에서 이름에 특별한 가치는 없다. 이름과 나이가 써져 있는 주민등록증은 '상품'에 붙여진 단순한 바코드에 불가하다.

'상품'의 연식은 92년생부터 59년생까지 다양하다.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하던 사람 중 가장 어렸던 이철희씨(23•가명)는 “현장에서 이 정도 나이면 매우 어린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사람도 많이 온다. 하루 빡세게 일하고 돈을 벌자는 생각일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오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젊다고 하지만 일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보고 싶은데 배운 것도 없다. 며칠 전에 집에 옷장을 봤는데 다 이런 옷뿐이더라. 작업하기 편한 헤진 군복이나 주머니 많은 조끼 같은 옷 뿐이었다. 집에 있는 옷 중에 가장 비싼 옷은 고등학교 때 잠깐 입었던 교복이 전부다”고 했다. 몇 마디 더 나누고 싶었지만, 가장 최근의 연식을 가진 이철희씨는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봉고차에 올라탔다.

이와 반대로 인력사무소에 가장 먼저 왔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김진철(65•가명)씨였다. 오래된 연식 때문에 어느 작업장에서도 거절당했다고 한다. 김진철 씨는 인력사무소를 나와 남구로역 뒤에 있는 구로 디지털 단지를 보고 “저기도 내가 만든 건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숙련공이라고 대우해줄 때는 언제고 지금은 늙어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는 건지. 오늘도 공치면 벌써 한 주째인데, 다음 식사는 여김없이 내일 아침 밥 차겠구먼” 이라고 말했다.

ⓒ고함 20

10만 8천 5백원. 남구로를 통해 작업장에 가면 받는 하루 일당이다. 일당이 아니다. 인력시장의 노동'상품'을 온 종일 사용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름은 가치가 없다. 단순하게 바코드 뒤에 있는 숫자에 불가하다. '상품'의 가치는 10만 8천 5백원에 통일된다. 그래서 누구나 비슷하게, 작업하기 편한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는다. 슈퍼마켓에 비슷한 포장지를 입은 상품을 보는 기분이다. 살아 있으며 생각도 할 수 있는 '상품'이지만, 그저 판매만 되는 곳, 이곳은 남구로 인력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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