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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분노와 탄식

  • 입력 2014.10.13 10:41
  • 수정 2014.10.13 10:53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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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재단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는 김중배 선생


‘노예한테도 책임이 있는가?’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7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유언론실천재단 출범식에서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MBC 사장)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고, 되돌아보니 오늘의 언론 현실이 기가 막혔다.

이날 출범한 자유언론실천재단의 고문으로 참여한 김 선생은 사회자로부터 축사 한 마디 요청을 받고 단상에 올랐다. 김 선생은 인사말에 이어 독재정권 당시의 ‘추억담’ 하나를 소개했다. 당시를 살고 겪은 원로 언론인의 생생한 육성 증언인데 그냥 추억담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다.

“당시 (권력자들이) 소위 ‘언론기본법’이라는 걸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그들과) 논쟁을 하는데 그걸 입안한 사람들이 우리한테 말하길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 법인데 언론인들이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도저히 말인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노예한테도 책임이 있는가, 노예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요즘 그런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약칭 ‘언기법’으로도 불려온 언론기본법은 전두환 군사정권이 언론을 조직적으로 탄압, 장악하기 위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에서 만든 대표적 언론악법이다. 이 법은 정기간행물 등록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것으로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골자로 한 것이다. 언론보도를 일일이 통제했던 ‘보도지침’은 이 법을 근거로 자행된 것으로, 6.29선언 후 폐지됐다.

1975년 3월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김 선생의 얘기는 다시 이어진다. 우선 과거 몇몇 언론인들의 피나는 언론자유 투쟁 결과를 무임승차한 후안무치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오도된 자유, 언론자유를 질타했다. 그리고는 향후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임무, 역할에 대해서도 소만을 피력했다. 이날 주최 측은 본 행사에 앞서 7, 80년대 언론자유 투쟁을 담은 영상을 상영한 바 있다.

“피나는 항쟁으로 그나마 한 때 자유언론의 숨통이 트였던 그 조류에 무임승차했던 세력들이, 언론종사자들이 이 자유언론하고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자유언론을 만끽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자유와 지실식되고 고갈되고 피투성이다가 되고 낭자한 죽음의 행령이 이어지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그들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는,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후안무치한, 이런 자유의 혼란, 자유의 모순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 세계화를 주름잡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언론의 자유 양상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핍박하고 정의를 말살하면서 그들만의 시장의 자유, 그들만의 기업의 자유를 지나치리만큼 과잉상태로 놓으려는 자유의 모순, 자유의 혼란을 연출하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이 이 혼란스런 자유, 자유언론의 반듯한 깃발을 새로 고쳐 세워야한다고 한다. 노예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자유를 우리 재단이 추구해서 이뤄내고 그 열매를 모든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런 얘기는 ‘김중배’, 혹은 ‘김중배 부류’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당일 행사에서 제일 먼저 축사를 한 윤활식 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동아일보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비록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자신과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낫살이나 먹은 언론인 가운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과연 몇이나 될까? 박정희-전두환 시절 독재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한 언론인이 무릇 기하(幾何)더뇨.

목하 우리 언론계는 일면 언론자유를 만끽, 향유하고 있다. 가히 언론의 백화제방 시대라고 할만도 하다. (물론 박근혜 정권의 신종 언론탄압은 별개로 치기로 한다.) 이런 자유는 동아투위, 80년 해직언론인 등이 피눈물을 쏟으며 투쟁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김중배 선생 말마따나 언론자유 투쟁과는 전혀 무관한 자들이 과분할 정도로 언론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

이날 자리는 자유언론실천재단 출범을 축하하는 자리였고 또 재단이 이 시대에 필요한 단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마음이 무거웠고 불편했다. 동아투위가 40년만에 다시 부활한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기 때문이다. 동아투위의 투쟁사는 한국언론운동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되면 그뿐이다. 그런데 다시 그 후신이 부활한 것은 이 시대가 '제2의 동아투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며, 현재 한국의 언론 상황이 박정희-전두환 시대와 같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 번에 보기 어려운 선배 언론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뵌 것은 분명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만남이 기쁨만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이유에서였다. 무도한 정권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다시 언론 현업으로 돌아와 붓과 마이크를 잡는 입장에서 필자는 몹시도 마음이 무겁다. 이제 그 짐을 양 어깨에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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