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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소녀, '희망'을 말하다

  • 입력 2014.09.30 14:16
  • 수정 2014.09.30 14:40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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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엄지뉴스'에 올라온 폰 사진 한 장. 소녀가 칠판 앞에 서 있다. 2014. 9. 28.

<오마이뉴스> ‘엄지뉴스’에 예쁜 여고생 사진 하나가 떴다.[기사 ☞ 바로가기] 누군가가 찍은 ‘폰 사진’이다. 제목은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칠판을 배경으로 여학생 하나가 서 있다. 춘추복인지 하얀 블라우스 위에 입은 조끼에 꽂힌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오는데, 소녀는 노란 바탕에 검고 굵직한 글씨가 쓰인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종이에는 굵직한 글씨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쓰여 있다. 칠판에는 이 여학생이 썼음직한 단정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원합니다.

2014. 9. 27 세월호 참사 165일째
○○여고 박○○

나는 이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구호가 쓰인 종이로 반쯤 가려진 얼굴. 눈빛이 맑고 깊다. 중앙 가르마를 탄 단정한 머리,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전형적인 우리나라 여고생의 모습이다. 입시 준비가 바쁜 고3 수험생, 무엇이 이 아이를 칠판 앞에 세웠을까.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소녀의 모습은 우연히 찍힌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경을 꾸미고 찍은 사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소녀의 부탁을 받은 같은 반 친구가 찍었을까. 사진을 <오마이뉴스>로 보낸 사람은 아이 본인일까, 아니면 친구일까.

'가만히 있으라'는데 칠판 앞에 선 아이

자신의 일이 아닌, 사회적 관심사에 학생이 관심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그것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50일도 남지 않은 수험생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날마다 들어도 시원찮은 처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칠판 앞에 섰다.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종이를 들고. 아이의 옷깃에 얌전하게 꽂힌 세월호 노란 리본도 예사롭지 않다. 칠판에 쓰인 ‘참사 165일째’와 ‘보약 대신 단식’이란 문구는 이 아이의 사진이 돌발적인 일회성 해프닝으로 촬영된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말해준다.

단식이라고? 나는 조금 더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전교조에서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에 뜻을 같이해 진행한 점심 단식에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 마음을 보태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글쎄,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지가 않았을 뿐이다.

▲ 아이의 단식은 이 아이의 눈물과 동질적이다. 그 이름은 '공감'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아이는 ‘보약 대신 단식’을 선택했다. 얼마나? 며칠간이나? 하고 생각하다가 그게 쓸데없는 호기심이란 걸 뒤늦게 깨닫는다. 하루든, 반나절이든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이 지금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한 현안으로 떠오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매우 용감하고 분명하게.

그걸 굳이 ‘용감하다’고 말한 이유야 분명하다. 아이들이 함부로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에 좀 많은가. 80년대식으로 반응하는, ‘배후’니 ‘선동’이니 ‘조종’ 같은 음험한 어휘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그나마 이번 참사의 희생자가 저희들 또래이니 아이들의 관심을 간단히 윽박지를 수만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는 지난주에 서둘러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우리 학교 3학년 아이들을 생각했다. 진작부터 지쳐가고 있던 아이들은 2학기 들면서 맥없이 너부러지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엎어져 단잠에 빠지고, 깨어 있어도 가끔씩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성적은 나오지 않고, 시간은 재깍재깍 다가오고……, 그게 말하자면 '멘붕' 직전의 요즘 ‘고3’인 것이다.

아이들에겐 자신에게 닥친 입시 문제 때문에 다른 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아예 없다. 아이들은 사고 무렵, 반짝하던 뉴스와 화제에 눈을 빛내다가 다시 교과서에다 코를 박아버렸다. 진도 앞바다에 3백여 생목숨이 가라앉은 지 어느새 반년이 가까워오는 것이다.

지난 5월에, 분회의 동료교사들과 나들이하는 길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화제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선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지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잘 내색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제 코가 석자예요. 이 참사의 성격을 고민해 볼 여유도 없고요…….” “사내애들이라서 그렇겠지만, 아이들에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요?”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어쩌면 ‘공감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아이들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려서이기도 하지만, “너희들은 몰라도 돼. 너희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입시경쟁으로 치닫는 오늘의 학교와 교실이 만들어 낸 슬픈 풍속도다. 아이들에겐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는 법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그것을 드러내는 데도 서투르기 짝이 없다.

세월호 이후의 '희망과 연대'를 위하여

아이들의 세계는 입시·대학·진로·미래에 대한 고민으로도 벅찰 만큼 좁고 옹색하다. 거기서 아이들은 경쟁에서 이겨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미래의 안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일과 능력을 선점하기 위해 늘 책에다 머리를 파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여학생의 선택이 소녀의 다정다감한 감수성에서 비롯한 일회적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객관적 조건은 열악하지만, 때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고 그 답을 얻곤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아이는 입시준비에 바쁜 수험생이지만, 또래의 아이들 수백 명이 숨져 간 이 참사의 진실을 찾기 위한 유족들과 우리 사회의 노력에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과 삶이 내 그것과 어떻게 이어지고 겹쳐지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가 부모님으로부터, 그리고 선생님들과 이웃으로부터 격려 받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쓴 시간만큼 아이는 충분히 거기 걸맞은 성장으로 보상받으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소녀의 동참에 힘입어 세월호 특별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오직 이윤을 위해 질주해 온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기억을 회복하는 일이고, 4월 16일 이후, 고통스럽게 이어져 온 이 '기억과의 투쟁'이 ‘세월호 이후’의 '희망'과 ‘연대’를 위해서라는 걸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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