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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화보 사기'에 걸려든 제주 도민들과 검사

  • 입력 2021.09.07 01:18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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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주에서는 방탄소년단(BTS) 화보 제작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사람들을 속여 투자금 110억을 가로챈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투자회사 대표 A씨는 2018 3월부터 2020 3월까지 BTS 화보를 제작·판매해 원금과 연 20%의 수익금을 보장해준다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A씨와 일당들은 화보 샘플까지 준비해 사람들을 속였고, 피해자들은 1인당 1~2억원을 투자했다가 수익금은커녕 원금조차 받지 못했다. 피해자만 무려 70명이 넘었고, 피해액도 11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제주에서는 250억원대 외제차 수출 사기 사건도 발생했다. B씨는 할부로 1억원짜리 고급 외제차를 대신 구입해주면 월 300~400만원의 할부금 대납과 차량 1대당 2000만원의 차량 수출 관세 차익금을 주겠다며 120명의 피해자로부터 250억원을 가로챘다.

B씨와 일당들은 할부금을 갚지 않고 차량을 대포차 등으로 넘겼다. 피해자들은 1억원이 넘는 할부금과 이자를 고스란히 안았고, 갚지 못한 사람들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제주에서는 의외로 사기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그것도 백억이 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도대체 왜 제주도민들은 쉽게 사기꾼에게 속을까?

제주에는 괸당 문화가 있다. 원래는 제사를 같이 지내는 친척으로 한정됐지만 지금은 지연, 학연 등이 합쳐진 포괄적인 공동체를 뜻한다.

이주민이 많아진 지금은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제주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집이 어디냐', '아버지 이름은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부터 물었다. 5분이면 상대방이 누구인지가 다 나온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인사를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아이러니한 모습도 종종 연출된다.

제주에서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친인척이고, 다른 지역에 살더라도 따져보면 다 연관이 있는 지인들이라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돈에 팔촌으로 걸린 괸당"이라고 말한다.

이런 괸당 문화는 혹독하고 척박한 제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버팀목이 됐고, 지금도 어르신들을 '삼춘'이라고 부르며 친척처럼 대우한다. 제주에서는 선거철에 "이당 저당보다 괸당이 최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괸당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외제차 수출 사기나 BTS 화보 사기 사건을 보면 피해자들 대부분이 친인척이나 학연, 지연 등 괸당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민들은 괸당끼리 사기를 치겠느냐며 투자하면 수익을 주겠다는 말을 무조건 믿었고, 삼춘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서로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보니 피해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거나 가문이 통째로 무너지는 등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9 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BTS 화보 사기 사건 재판이 열렸다. 그런데 판사가 검찰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유는 검찰의 공소장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제주지법 형사2부 재판장인 장찬수 판사는검찰이 공소장을 이렇게 써도 되느냐. 1~2번이 아니라 1년째 참았다."면서 "일을 똑바로 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답답하고, 불쾌하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장 부장판사는 "검사가 공소장에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 "이런 공소장은 피고인들이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걸로 사건이 종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공소장이 부실했다는 말은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전국범죄피해조사 2018' 보고서를 보면 사기 피해자들의 54.82%는 사기꾼들의 '그럴듯한 말솜씨'에 당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의 89.63%는 사기 피해액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하지만 사기꾼의 말솜씨를 일반 시민들이 당해낼 재간은 없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민들 피눈물 나게 하는 사기 범죄 형량 강화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올 지경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기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빠른 수사를 통해 범죄자를 조속히 검거해야 한다.

제주 경찰과 검찰이 수백억 원의 사기 범죄를 빠르게 수사하고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피해자들은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괸당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슷한 사기 사건은 제주에서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괸당 문화가 잘못이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이 문제이다. 다만, 도민들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럴듯한 말솜씨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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