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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 유권자'와 정치발전

  • 입력 2014.09.23 16:25
  • 수정 2014.09.23 16:39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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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이가 없네. 억지를 부려도 사람들은 죄다 자기네들을 믿어준다고 생각하나 봐요.”
스마트폰으로 신문기사를 들여다보던 아내가 던지듯이 내뱉는다. 안 봐도 아는 얘기다. 최근 담뱃값 증세를 비롯한 현안 문제에 대한 여당 쪽의 발언은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변명이라고 하는 얘긴데, 그게 억지가 되다 보니 반발하는 민심을 설득하기보단 냉소를 자아내게 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무성, “서민증세? 좌파 프로파간다일 뿐”
나성린, “우리는 부자증세 많이 했다” “담배는 서민보다 중산층이 많이 피워”
김무성, “거대한 규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야”
박대통령, “정치 위한 정치하고 있어”, 야당 맹비난 “국민에게 세비 돌려드려야, 민생법안 꼭 처리돼야”
김무성 “부자가 국민보다 더 많은 소득세 낸다”
김무성, “분명하게 말하지만 지금까지 부자감세 없었다”

요즘 인터넷 언론에 비슷비슷하게 오르내리는 기사 제목들이다. 말하는 사람은 여럿인데 공통점은 대통령을 포함하여 모두들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발언은 모두 야권과 여론의 비판에 대한 반응인데 이들의 말마디에 묻어나는 것은 이른바 ‘억하심정’이다.

좌파 선동? 부자에게도 세금 많이 물렸다?

담뱃세를 비롯하여 주민세, 자동차세 따위의 증세 방침을 밝혀놓고도 이들은 그것이 ‘서민 증세’가 아니라 ‘좌파의 선동’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그게 ‘부자 증세’ 대신 서민을 목을 조르는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렸다고 항변한다.

흡연율은 서민층이 높아서 담뱃세를 올리는 것은 이들의 부담을 늘리는 게 되므로 ‘역진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친다. 담배는 서민보다 중산층이 많이 피운다고 부르대는 것이다.(어제 <JTBC> ‘팩트체크’에서는 이를 다루었다. 서민을 소득하위 10%로 잡으면 전체 담배소비량의 5.5%에 불과하지만 40%로 보면 30%가 훌쩍 넘는다. 따라서 이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꼬이고 막힌 정국을 풀려고 하기는커녕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정치를 위한 정치’라고 비난하면서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니 ‘세비를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 모양이다. 그럼 대통령과 여당은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가? 야당이 공연히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것인가? 주객전도의 상황은 마치 닭이냐 병아리냐의 논쟁처럼 원점을 맴돌기만 한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 '호갱님'

이들은 ‘민생법안’이 바삐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름은 ‘민생(民生)’인데 정작 들여다보면 부동산 규제 완화와 관련된 법, 사행산업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 선상 카지노 설치 관련 법안,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등이다. 이들이 말하는 ‘민’과 상식의 ‘민’이 서로 다른 모양이다. 새사연 정태인 원장이 이들 법안을 ‘민사(民死)’법안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 사람들이 좀 많아야지.”
“하긴, 여기 사람들은 그저 대통령은 잘 해보겠다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고 아우성이니…….”
“호갱님들이 있는 한 ‘정권은 영원하다’지, 뭐.”
“호갱님? 그건 또 뭐유?”

휴대전화 시장에서 나온 신조어 ‘호갱님’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호구(虎口)’에다 ‘고객님’이 합쳐진 말이다. <엔하위키 미러>에 따르면 ‘호갱님’은 ‘주로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중심으로, 휴대폰에 대해 잘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휴대폰 할부원금을 과도하게 적용시켜 계약하는 고객’이다.


‘호구’가 되어주니 고마워서 ‘고객님’이란 존칭을 붙여 주었지만 ‘고객’ 대신 ‘고갱’으로 쓰는 것은 어쩌면 제 잇속만 차리는 게 면구스러워서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파는 쪽에서는 이들 ‘호구 고객’이 생광스럽기 짝이 없다. 자신들이 최대의 이익을 얻었는데도 고객들은 나름대로 좋은 상품을 ‘적당한’ 가격에 샀다고 믿어주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여당 입장에서 보자면 호갱님이 따로 없다. 세월호 참사 이래 실정을 거듭하면서 잔뜩 긴장했던 이들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뜻밖의 면죄부를 얻어냈다. 납작 엎드려 모든 걸 다 바꾸겠다며 표를 구하던 이들의 읍소가 제대로 먹힌 것은 유사 이래 최악이라는 무능한 야당 덕분이긴 하다.

유권자들이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집권당의 실정을 심판한다고 믿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거라던 선거에서 구태의연하게 여당을 다시 뽑은 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고울 리 없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걸고 당선된 대통령은 슬그머니 자신의 공약을 뒤집어 버린 뒤, 아무런 성과 없이 1년을 반을 보냈고, 그예 세월호 참사를 맞으면서 무능과 무책임이라는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선거에서 집권당은 변함없는 콘크리트 지지에 힘입어 기사회생했다. 두 번의 선거 결과는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총체적 무능도, 여론 따위야 ‘모르쇠’하면서 ‘마이웨이’를 외치는 권력의 ‘오불관언’도 용인해 버린 것이다.

호갱님이 물어야 할 ‘할부원금’

표를 보탠 이들은 자신의 지지로 이룬 승리를 기꺼워했겠지만 결과는 만만찮아 보인다. 이들이 모두 중산층 이상의 ‘부자’는 아니라면 감내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적지 않은 할부원금을 지불해 놓고도 공짜 폰을 마련했다고 즐거워하는 ‘호갱님’들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휴대전화의 호갱님들은 약정한 2~3년 동안 할부원금을 무는 것으로 멍청한 선택을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의 실정을 용서하고 면죄부를 내주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이 지불한 할부원금이란 기실 남은 3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의 변함없는 국정기조를 용인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간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여지없이 이어지고 있다. 뜻밖의 승리에 고무된 것일까. 정부여당은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인상을 통해서 이른바 ‘부자 감세’로 구멍 난 세수를 메우려 한다. 아이들도 이미 간파해 버린 이 증세의 명분으로 이들은 ‘국민 건강’을 부르대고 있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서민들에겐 적지 않은 세금 부담을 안겨놓고, 정부여당은 부자들에겐 맞춤한 세제 개편안을 마련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증여를 할 경우, 1억 원까지는 증여세를 면제해 주자는 법안이 발의되는가 하면, 내년부터 사회·경제 기여도가 높고 설립된 지 30년이 넘은 중소·중견 기업의 가업 상속 공제 한도가 현행 최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까지 확대되는 게 그것이다.

최근 보도된 일련의 증세에 대해 ‘서민 증세’가 아니라 ‘좌파의 선동’일 뿐이고, 지금까지 ‘부자 감세’는 없었으며 ‘부자가 국민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낸다’고 강변하는 이는 집권당의 대표다. 지금까지 ‘부자 증세’를 많이 했다는 이는 여당의 정책통이다. 이들의 사자후 앞에 서민들은 담배를 끊어야 하나 마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형국을 일러 정태인은 ‘막가파’를 떠올렸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이 잘도 흘러가고 있다. 대리기사 폭행 논란 등으로 세월호 피로감은 상승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고, 마침맞게 아시안게임이 개막하면서 국민들은 각종 경기 중계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앞으로 2016년 4월까지는 선거도 없다. 그것은 정부여당이 당분간 선거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이웨이’를 구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지리멸렬하고 있는 야당이 전열을 정비하는 것도 무망해 보이니 시간은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후하게 바라보려 해도 언제쯤 지난 선거의 ‘호갱님’들이 약정한 할부원금을 탕감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번호 이동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 장기 고객들이 이동통신 회사로부터 가장 박절한 대우를 받듯이 이들 ‘묻지 마 지지’도 그 충성도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걸 기대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들이 강남의 부자들이 아니라 평균적 서민일 경우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이 가진 애국심이나 충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때로 사랑은 ‘떡’뿐 아니라 ‘매’로도 표현되고 그것이 훨씬 바람직한 훈육의 방식이다. 어쩌면 지난 선거의 지지자들은 매 대신 떡을 건넴으로써 집권세력이 실정을 돌아보고 자신을 새롭게 할 기회를 앗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지지는 애증의 교차를 통해 성장한다. 선거가 한갓진 ‘민주주의 교육’을 떠나서 정치 세력들에게 성찰과 혁신의 계기를 부여하는 장이라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우스개 삼아 ‘호갱님’ 운운한 것은 우리 시대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의 방식과 꼬인 정치 상황을 바라보는 삐딱한 유권자의 넋두리와 푸념이라면 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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