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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경보기

  • 입력 2021.01.02 15:02
  • 수정 2021.01.02 17:18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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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1위에 올랐다. 불과 1년 전 지지율이 1%대까지 추락했던 안철수에게 다시 어떤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더 나은 정치인이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는 10년 전 묻어둔 타임캡슐 마냥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안철수현상은 처음부터 안철수와 무관한 현상이었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 현상을 분석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그가 서있는 지점, 상징하는 바가 중요하다.

안철수는 정치혐오의 부산물 같은 정치인이다. 그는 언제나 정치가 진흙탕에 빠질 때 호명된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당시 야권이 보수당에 무기력하게 패한 뒤, 기나긴 촛불투쟁 끝에 뭐 하나 바꿔내지 못한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여의도정치 어디에도 마음 줄 곳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시기, 안철수는 만찢남처럼 정치판에 등장했다.

안철수가 여의도정치에 대한 저주 하나로 국민 절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야권 지지자들이 느끼던 깊은 정치환멸과 관련이 있었다. 국회의원을 줄이고, 세비를 깍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정치인들은 나 빼고 전부 다 개새끼이고, 우물이 썩었으니 콜라를 마시면 된다고 외치는 이상한 '개혁가'에게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방 깨달았다. 남자는 오빠 빼고 다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놈이 제일 위험하다는 사실을.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야구를 잘할 수는 없다. 안철수의 당은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야구팀이다. 누구나 정치를 혐오할 자유가 있지만, 정치를 혐오하면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는 없다.

2021년 초, 지금의 정치환경은 안철수가 데뷔했던 2010년대 초와 닮았다. 거대여당의 독주와 기능을 상실한 제1야당, 지긋지긋한 추윤갈등과 늘어나는 부동층. 정치혐오가 기생하기 최적의 조건이다. 자연스럽게 안철수의 이름이 살아난다. 그러니까, 안철수의 지지율은 일종의 정치혐오 경보기다.

그럼 안철수는 언제쯤 무대에서 퇴장하게 될까? 사람들 마음에서 정치혐오가 사라지고 희망을 품을 때 그런 정치는 설 곳을 잃는다. 반대로 정치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들이 정치에 기대를 버릴 때 안철수의 정치는 오래오래 살아남겠지. 정치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안철수의 정치는 해롭다. 그러나, 안철수를 호출하는 정치 토양을 그대로 둔 채 안철수를 손가락질하는 것은 병의 원인을 외면한 채 증상에 매몰되는 것이다.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를 다시 소환해낸 정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by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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