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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편리한 ‘어머니 사용법'

  • 입력 2020.11.10 17:01
  • 수정 2020.11.11 02:51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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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교수 페이스북

한때 존경받는 진보 지식인이었던 김민웅은 얼마전 자신의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때로는 섭섭해도 침묵하고 끝까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다움'이라며 윤미향과 맞서는 이용수 할머니를 매섭게 꾸짖었다.

MB정권 언론장악의 피해자였던 MBC 김민식PD도 오늘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칼럼에 적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담담히 회상하면서, 오히려 피해자인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을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관련기사: 지식인의 진짜 책무 / 김민식. 한겨레

어조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어머니상은 일치한다. 저들은 헌신적인 어머니를 칭찬하거나, 헌신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어머니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들이 말하는 '어머니'란 고분고분한 어머니, 희생적인 어머니, 어떤 일에도 묵묵히 헌신하는 가부장세계의 이상적 어머니상이다. 이는 얼마전 정은경 청장을 '국민 맏며느리'라 불렀던 강기석 이사장의 지론과도 일치한다. 강 이사장은 맏며느리란 '머리가 하얗게 세면서도 묵묵히 집 안팍의 우환과 홀로 맞서는 존재'라고 묘사했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도구삼았다는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김민웅은 이용수 할머니를 비난하기 위해, 김민식은 (아마도) 진중권을 비난하기 위해 각각 자신의 어머니를 꺼내들었다. 저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나오는 염치없는 소년 같다.

김민웅은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을 떠올리고도 '어머니는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했을까?' 궁금해하지 않았다. 김민식은 매맞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도 그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진영수호의 늪에 빠진 그들에게 어머니의 삶은 저열한 비유의 도구일 뿐이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왕년의 영웅들의 고백을 보며 비애를 느낀다. 세상이 바뀌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가 될 줄 알았더니, 철없는 가부장들의 나라가 되었다.

by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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