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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을 보고 편히 웃을 수 있을까

  • 입력 2014.09.17 14:34
  • 수정 2014.09.17 14:52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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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케이블 방송의 ‘Let美人’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작은 메이크오버가 연달아 등장하는 ‘겟잇뷰티’ 같은 프로그램은 차라리 단출하게 느껴진다. 풍부한 색감과 잇단 물광피부는 감탄스럽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판타지의 '약발' 까지는 아니다. 성형심리를 조장한다는 무수한 지적에도 렛미인은 더 많은 패자부활을 통해 지원자들을 거둬들였다.

언뜻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아름다운 얼굴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는 프로듀서의 해명에도 사람들에게 결국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져야한다는 압박을 주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모의 변화를 통해 새로 얻은 인생이다. 렛미인은 네 번의 시즌을 거치며 아주 진부한 판타지를 실천했다. 지원자를 인생의 출발선에 다시 세우는 엄청난 일이다.

렛미인 방송화면 갈무리

렛미인에 선정된 후, 지원자의 외모는 그의 모든 환경과 연결되어 방영된다. 얼굴을 포함한 모든 조건이 과거로 남을것이기 때문에 패널들은 마음껏 지원자를 동정한다. 초면의 렛미인 지원자의 신체를 보거나 만지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등장과 동시에 터지는 감탄사는 외모에 대한 무례하다는 말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지원자가 특이한 존재로 부각되는것은 이 부분 뿐만이 아니다. 신체부위를 묘사한 닉네임에는 ‘관계와 위치’가 함축된다. 어딘가에서 엄마, 딸, 누나인 이들은 주로 집에서 천덕꾸러기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외모가 변하기 전까지 말이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 혹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다. 여기에 열악한 직장이나 집 구조, 무능력한 가족구성원들도 ‘못난 외모’의 부수적인 효과로 등장한다. 이러한 강조는 극적인 반전이 있을수록, 더 노골적으로는 패널들이 새로운 미인을 향해 환호할수록 위험하다. 기존의 문제들이 새 렛미인이 등장할때마다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렛미인 방송화면 갈무리

렛미인은 "성형을 하면 배우자나 자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들의 생활을 여과없이 방영한다. 특정 신체부위가 화면가득 나타나고, 이후 모든 말과 행동, 심지어 직업과 집의 위치, 가족관계, 식사습관, 성격이 일관된 원인으로 수렴된다.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은 결국 '성형' 하나로 대체된다.

'성형이 인생을 바꾼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지원자들의 인생에서 정말로 '변화'한 것은 그들의 외모 뿐이기 때문이다. 외모로 지원자들을 차별하던 사람들은 그대로다. 변화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환경이 성형수술이라는 지원자의 고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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