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노동법 날치기 현장


인간 세상에 한번 계급이 만들어지면 그걸 없애는 데는 수만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대 노예제를 만든 건 몇몇 상인의 아이디어였지만 그걸 없애기 위해 전쟁이 필요했다. 한국의 위정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계급에 선을 그어 놓은 게 1996년의 일이다. 그때 만들어진 정리해고제로 정규직 일자리 수백만개가 사라졌고, 그때 만들어진 근로자파견제는 그 자리를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채웠다. 마치 곧 imf위기가 닥쳐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노예제도가 인종적 편견을 확산시켰듯 저임금 비정규직의 양산은 비정규직의 계급성을 만들어냈다. 이제 정규직/비정규직 사이 임금은 두배, 재직기간은 세배 차이가 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보다 확실한 신분 구별은 없다. 이 신분은 명절 스트레스 지수에도, 소개팅 성공 확률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꼬리표다.




직썰만화 '요즘 애들은 하여튼'


20년전 사람들은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적어도 노동자들끼리 서로의 자리를 놓고 으르렁거릴 일은 별로 없었다. 한국노동사의 거시적 맥락에서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여년. 이제 사람들은 그것들 사이에 신분 격차를 공기와 같이 느낀다. 마치 태초부터 그런 신분이 존재했던 것처럼. 고대 벽화에 채찍질당하는 비정규직이 그려져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지금 인천공항 정규직전환에 울분(?)을 토하는 취준생들은 날 때부터 정규직 신분을 목표로 달려온 인생들이다. 그들의 인생은정규직 쟁취를 위한 한판 승부로 요약된다. 신분 구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신호에 그들은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꺾이는 느낌을 받는다.


인천공항 사태는 악의적 가짜뉴스로 촉발됐지만 가짜뉴스가 해명된다고 논란이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자리가 너희 자리가 아니라는 해명은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들의 근본적 불만은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격차 완화) 정책 자체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직썰만화 '요즘 애들은 하여튼'


비정규직을 없애고 더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외침은 이들에겐 공허하기만 하다.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네가 누린 특권을 돌아보라는 말은 더 맥빠진다. 우리사회가 언제 그들에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줬던가. 뒤돌아보지 말고 이기적으로 살아 노동 상위계층을 쟁취하라고 다그치던 어른들이 갑자기 그들의 이기심을 손가락질한다. 어리둥절하다.


신분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젊음일수록 박탈감이 크다. 인천공항 사태의 격렬한 반발이 주로 고학력 취업준비생에게서 나타나는 이유다. 인천공항 노동자의 90%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10% 진입을 위해 달려온 인생이다. 자녀교육에는 이념이 없다. 보수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자녀들에게 그걸 목표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어른들은 이기는 법을 가르쳐줬을 뿐 패자의 비참함을 공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정부정책에 찬성하는 청년을 '좋은 청년'이라 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직전의 세상에서는 이기적인 청년이 좋은 청년이었으니까. 이제와서 그 구분이 틀렸다, 네가 이기적이다 당당히 훈계하는 어른들은 염치가 없는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격차 완화) 정책을 지지한다. 2030 204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손을 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선대 위정자들이 노동시장에 선을 그어 놨으니 이 아수라장을 수습하는 일도 위정자들의 몫이다. 이 긍적적 변화를 당혹스러워하는 청년들을 설득하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다.


그들의 박탈감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어른들이 당혹해하는 청년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말은 '미안하다'가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잘못된 세상을 만들고 가르쳐왔다는 고백이 아닐까. 그리고나서야 새로 만들려는 질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