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입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매년 5월이면 봉하마을을 향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을 동원한 인위적인 추모 행사도 아닌데도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시민이 줄을 잇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를 그리워하게 했을까요?




네 번의 낙선… ‘참 바보 같은 사람’


노 전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건 크게 세 시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88년 5공 청문회를 통해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됐던 시기와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를 떠나 부산에 출마했던 2000년 총선, 그리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과 함께 한 대선 경선입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네 번째로 낙선했던 2000년입니다. 사실 정치인 노무현은 총선에서 네 번씩이나 낙마할 필요가 없던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88년 노무현은 당으로 부산 남구 출마를 제의받았지만, 신군부 출신 허삼수와 붙겠다며 부산 동구에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1992년에는 부산 동구에 다시 출마했다가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당적을 바꾼 허삼수 후보에게 패배합니다.


1992년의 패배는 1990년 1월 여소야대를 뒤엎고 지역 분열을 조장하는 ‘3당 합당’의 영향이 큽니다. 당시 노무현은 3당 합당에 반대하며 거대 여당이 된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때 여당에 따라갔다면 국회의원이야 세 번, 네 번 하고 장관도 일찍 하고 도지사, 시장도 한번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잘못된 정치 풍토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의 큰 자부심이고 행복입니다.”


1995년 6월 노무현은 제1회 지방동시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자당의 문정수 후보에게 패배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노무현의 부산시장 출마를 만류했습니다. 경기지사 여론조사에서도 우위를 보였고, 조순 서울시장 후보도 부시장으로 러닝메이트를 제안했지만, 이를 모두 뿌리치고 다시 부산에 도전한 것입니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도전했습니다. 부산시민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면 뽑아주겠다고 권유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일입니다. 정치인의 원칙과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1996년 노무현은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선거가 끝난 후 이명박 후보의 김유찬 전 비서관이 금권선거를 폭로했고, 이명박은 의원직을 사퇴했다. ⓒ유튜브 캡처



1996년 노무현은 서울 종로에 출마합니다. 부산이 아닌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유는 당시 벼랑 끝으로 몰린 노무현의 결단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선되면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때문에 1996년 종로 선거는 두 사람의 악연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당시만 해도 이명박에게 패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본인뿐 아니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다. 2등도 아니고 3등으로 떨어졌다.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가 그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된 이명박은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의 ‘금권선거’ 폭로로 결국 의원직을 사퇴합니다. 이때 노무현은 보궐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다시 한번 출마해 국회에 재입성에 성공합니다. 이제 정치 1번지 종로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중앙 정치 진출에 대한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 2000년 총선 패배 이후 이를 비통해한 시민들은 ‘바보 같은 노무현님께’라는 글을 올렸다. ⓒ유튜브 캡처



그런데 웬걸, 노무현은 2000년 입지를 다져놓은 종로를 뒤로하고 다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의 부산 출마를 만류했습니다.


‘굳이 노무현 당신이 아니어도 지역 분열을 막을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거에 져놓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그를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부산에 다시 도전했고 보기 좋게 낙선했습니다.


노무현은 2000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시민들은 자꾸 떨어지면서도 부산에 출마하려는 노무현의 바보 같은 모습 속에서 그의 진심을 알게 됐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노무현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노무현재단은 공개한 2000년 총선 미공개 영상 다큐 ‘새로운 날들’을 보면 당시 선거에서 그가 보여줬던 인간적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유세 도중 식당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노무현 후보 ⓒ유튜브 캡처



노무현은 선거운동 중 한 식당에 가서 인사를 하다 잠시 앉아 음료수를 얻어 마십니다. 그러면서 밖에 선거운동원에게는 음료수를 줄 필요가 없다고 식당 주인에게 말합니다.


어찌 보면 참 야속한 사람 같기도 하겠지만, 사실 선거를 하루 앞둔 노무현은 거의 탈진 상태였습니다. 오죽하면 식당 주인이 저 앞까지만 걸어가고 나머지는 차로 이동하라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목은 잔뜩 쉬어 있고, 유세 현장의 반응은 상대 후보의 지역감정 발언으로 그리 좋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느냐는 반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이기고 싶은 그의 마음은 아이와 같은 말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 선거운동 기간 노무현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선거 운동을 위해 차로 이동하던 중 노무현 후보는 이런 말을 합니다.


“손님 머리 손질 딱 하다가 누구 찍을 거냐 물어보고, 아무 말도 안 하면 ‘2번 찍을 겁니까, 안 찍을 겁니까?’ 다시 물어보고 안 찍는다 하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그럼 안 되겠제?”


자신이 말을 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스스로 허허 웃습니다. 자신을 안 찍으면 손님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리겠다고 말하는 이발사 노무현, 어쩌면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지배한 지역감정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총선 패배 후 선거사무실에서 봉사자들에게 질타받는 노무현 후보 ⓒ유튜브 캡처



노무현 후보가 낙선하고 선거운동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선거를 돕던 자원봉사자는 ‘다음 선거는 시험을 쳐가지고 하세요, 시험을 쳐서, 시험 쳐서 하십시다. 이렇게 선거하지 마시고, 이 안에서 과거시험 쳐가지고 우리 합시다. 예’라며 노무현 후보를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에는 왜 상대방 후보처럼 이기는 선거를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정직하게 선거운동을 해서 낙선했느냐는 원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가 생각했던 정치적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의 패배, 그의 실패, 그의 원망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를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기보다는 그저 대한민국에 있던 별난 정치인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노무현.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도전과 실패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 지를 깨닫게 됩니다. 비록 당시에는 그게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그가 남긴 최대의 유산이자,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 2013년 5월 23일 최초 작성된 글을 일부 수정해 재발행합니다.



직썰 필진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