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미국은 연방정부의 재정 부채한도를 어떻게 정할까. 미 재무부가 정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는 연방의회에서 논의하고 정한다. 미국과 한국은 부채에 대한 재정준칙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의회가, 한국은 기획재정부가 부채의 한도를 실질적으로 정하고 관리한다. 이는 미국은 부채한도의 관리를 정치적 이슈로, 한국은 이를 행정적 이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 및 재난지원금에 대한 설왕설래도 모두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는 향후 우리 사회가 정치적 문제와 행정적 문제의 구분을 꼭 분명히 해뒀으면 한다. 기본적으로 ‘재정으로 지원한다’는 행정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골라서 지원할 것이냐, 다 같이 지원할 것이냐는 분명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관념적인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할뿐더러 단순 재정건전성을 떠난 가치관들이 상호 간에 충돌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계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다분히 행정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채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분명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국가부채라는 것은 결국 정부의 지출 크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에 관한 다양한 가치관들이 상호 간에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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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재정의 문제에 있어 정치의 영역이 행정의 영역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도록 헌법 제57조에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만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거나 편성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의 존재 의의를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 최종적인 결정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판단할 경우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A당과 B당이 있는데, B당이 과반을 획득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그 후 B당이 다수의 의석을 활용해 ‘B당 사랑법’이라는 법을 입법시킨 후 이 법률에 따라 매년 100조 원씩 B 굿즈를 매입하는 예산안을 내놓았다고 하자.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위배될뿐더러 현 국가 예산의 20%를 증액하는 위험한 결정이다.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헌법 제57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와 기획재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렇게 분명한 정치적 영역에서 입법부보다 더 큰 결정권한을 자연스럽게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획재정부의 재정건전성 추구에 대한 비판을 이번 재난소득지원금 하나로 모두 떠받칠 수는 없겠으나, 분명히 홍 부총리 스스로가 여러 차례 100% 지급은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최근에는 ‘부유층까지 지급하기 어렵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이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부유층까지 지급할지 말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대의민주주의 하의 국회가 합의할 문제이지 경제부총리가 언급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재정건전성 방어를 위한 부채비율 역시 합의로 정할 일이다. 기획재정부가 전문가니 맡겨야 할 일이라고 하실 분들께는 되묻고 싶은 것이, 그렇다면 왜 미국은 자국 재정의 부채한도를 의회에서 협상하는 것일까? 미국의 국회도 법조인들이 가장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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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70% 고집을 포기하고 여당안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촉구는 이와 같은 기저에서 발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재정이 정치의 문제라면 청와대가 왜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볼 때 청와대보다는 여당이 기획재정부를 압박하고 기획재정부가 협의에 나서는 그림이 옳다고 본다.


그 이유인즉슨, 기획재정부가 특정 재정집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대통령이 선거 중 여야 간 합의와는 별도로 전체 지급에 대해 특별한 언질을 주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뜬금없이 직접 기획재정부를 압박할 경우 이는 그 자체가 소통의 혼선이며 더 나아가서 재난지원금이 청와대의 ‘펫 비즈니스(Pet Business)’로 여겨질 위험도 있다. 애당초 100% 지급 자체가 여야 간 선거 중 오가다 합의됐던 담론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경제부총리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지금 대통령이 부총리를 냅다 경질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부총리 권한대행이 인수인계를 받겠지만 말 그대로 ‘권한대행’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고, 새 부총리를 임명하려면 인재 물색부터 청문회까지 지난한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여당이 180석인데 청문회 안 하면 그만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야당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절차는 더 잘 지켜야 한다. ‘독재’ 프레임을 갖고 또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갖고 그 힘을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것이 정치 같지만, 그런 정치는 필연코 권위주의로 흐르게 된다. 때문에 ‘행정부 수반이 의사결정을 하고 그 책임을 지면 된다’라는 속 편한 소리는 그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서도 그리 필요한 담론은 아니다. 



직썰 필진 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