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가 청소년 유권자 교육, 청소년 모의선거와 관련하여 상식적인 입장 정리조차 못하고 오락가락,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한국YMCA 전국연맹이 진행한 청소년 모의선거와 함께 여러 외국 사례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가 최근 학교 내 청소년 모의선거를 불허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서 삭제했다고 합니다. 


김진곤 시흥YMCA 사무총장이 공유해 준 중앙선관위 동영상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게 두 개의 당선증을 받았다. 하나는 중앙선관위로부터 또 하나는 청소년들이 모의 선거로 뽑은 대통령 당선증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중앙선관위가 만든 이 홍보 동영상은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교육 기회로 모의선거를 소개하고 있고, 세계 각국의 청소년 모의선거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보다 훨씬 일찍 청소년 모의선거가 시작됐고,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모의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본 바로 청소년 모의선거는 매우 흥미롭고 생생한 민주시민 교육 방법의 하나입니다. 2017년 지방선거와 2018년 대통령 선거 때 청소년 모의 투표 선거관리위원으로 참여해 본 제 경험으로는 교실에서 했던 어떤 민주시민교육 현장보다 모의 투표 현장의 열기가 뜨겁고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2017년 지방선거 때는 경남지역에서 청소년이 뽑은 도지사로 김경수 현 도지사, 청소년이 뽑은 교육감으로 박종훈 현 교육감이 각각 당선됐습니다. 중앙선관위가 만든 홍보 동영상처럼 김경수 도지사와 박종훈 교육감도 청소년이 뽑은 도지사와 교육감 당선증을 각각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대통령 선거 모의투표를 경남에서도 진행했으며, 현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지역에서도 최다득표를 했습니다. 지난 두 번의 전국적인 청소년 모의 투표는 어른들의 과도한 우려와 달리 매우 진지하게 진행됐습니다. 





선거관리위원으로 온종일 오프라인 투표소를 지키면서 투표하러 온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해보니 장난스럽게 참여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사전에 청소년 유권자로 등록을 하고 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부모님 앞으로 배달된 선관위 공보물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고 답했고, TV 토론을 보고 왔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청소년 모의 투표 유권자로 등록하고 나니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들을 평가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일하는 단체는 꽤 오랫동안 경남 지역의 여러 학교 현장을 찾아가서 교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왔지만, 모의 투표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하게 됐습니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 과정에도 모의 투표 수업이 진행됐지만, 가상의 후보와 가상의 공약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만큼 관심과 흥미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2017년 지방선거와 2018년 대선 모의 투표는 실제 후보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훨씬 진지하게 인물과 공약에 대한 나름대로 평가를 가지고 투표에 참여하더군요. 


사실 2020년 총선은 청소년 모의 투표를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가 중앙선관위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있습니다. 2017년 지방 선거 때는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포함돼 있어서 교육청이나 학교와 협력하기가 쉽지 않았고, 2018년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탄핵으로 갑자기 치러진 선거다 보니 체계적인 협력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총선은 지난 두 번의 모의투표 경험도 있고, 교육청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청소년 모의투표를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 선거법 개정으로 18세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중앙선관위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급기야 학교 내 모의 투표를 못 하게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선관위 직원은 “2018년에는 선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그건 그때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황당한 답변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지역 선관위 직원은 YMCA 등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모의 투표도 불법이라고 했습니다만, 다행히 중앙선관위가 YMCA 등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모의 투표는 가능하다고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캡처



중앙선관위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사이 지역 교육청도 몸조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학교 현장의 분위기도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6일 중앙선관위가 “교육청 주관하에 교원이 실시하는 모의투표는 선거권이 없는 학생 대상으로도 불가”하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13일에는 “교육청 주관 또는 후원이 아닌 시민단체 주관의 학교 모의투표는 가능하다”는 새로운 답을 내놓음으로써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단 한 푼의 예산 지원도 받지 않고 YMCA 등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진행해온 청소년 모의투표(선거)는 앞으로 서구 선진국들처럼 법제화돼야 하고, 정부 예산으로 유권자 교육과 모의 선거가 활성화돼야 합니다. 중앙선관위의 시대착오적인 뒷걸음질이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중앙선관위가 만든 청소년 모의투표 홍보 동영상



직썰 필진 잡곡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