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가 돌았다. 일 년 전에 고3이 됐던 학생들이 어느덧 수시를 거쳐 수능 시험을 치르고 마침내 졸업까지 했다.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목숨이 걸리지 않은 전장이 있겠느냐만 사투라 해도 무방했다. 교육 현장은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했다. 모두에게 그러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길 원하는 학생들도 필사적이었지만, 교사들의 어깨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대치고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된 고하늘(서현진)의 일 년은 어땠을까. 부푼 꿈을 안고 학교로 왔던 그는 악성 루머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고하늘이 교무부장 문수호(정해균)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으로 들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평소 교류 없이 지냈기에 터무니없는 소문이었지만, 고하늘은 오해가 풀리기까지 동료 교사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신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뿐이다.”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계급’적 차이는 은밀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차별과 멸시가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기간제 교사의 지위는 불안하기만 했다. 유일하게 고하늘을 믿어줬던 기간제 교사 송지선(권소현)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다. 고하늘에게는 큰 상처가 됐다.





같은 평교사라 해도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는 발언권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같은 교무실에 있어도 기간제 교사는 ‘객’처럼 쉽사리 스며들지 못했다. 또, 일 년 계약된 기간제 교사들은 대체로 모든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어차피 내년이면 떠나야 할 학교에 정을 주려 하지 않았다. 애착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임용 준비와 정교사 채용을 위해 거쳐 가는 과정 정도로 여겼다.


학교 측도 굳이 기간제 교사에게 연속성 있는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고하늘이 심화반 동아리 ‘이카로스’를 맡게 된 건 학교 내의 복잡한 정치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의욕을 보였던 고하늘도 자신의 신분을 계속해서 각인시키는 동료 기간제 교사들의 말에 흔들렸다. 다행히도 고하늘의 옆에는 박성순 진로부장(라미란)이 있었고, 오로지 학생만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직장이든 한 명은 있다는 그 ‘또라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절친이 된) 김이분(조선주)와 교과 파트너가 되면서 겪은 갈등, 구조적 중의성을 의도하고 낸 문제에서 수능 기출인 어휘적 중의성까지 고려해 문제를 푼 학생들 때문에 발생한 희대의 ‘바나나 사건’ 등 참 많은 일들이 고하늘 앞에 펼쳐졌다. 그 때마다 고하늘을 움직였던 하나의 원칙은 ‘학생들을 위한 게 무엇인가?’였다.





힘겨운 일 년을 잘 뚫고 나온 고하늘에게도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공립학교 임용 시험 및 사립학교 정교사 채용이 치러졌다. 고하늘은 대치고 1차 필기시험에 응시했고 무난히 통과했다. 대치고에서 6년째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해원(유민규)도 마찬가지로 합격했다. 한편, 행정실장의 조카로 진짜 낙하산으로 밝혀진 영어과 기간제 교사 장희수(안상은)는 5배수 안에 들지 못하며 탈락했다.


최종 후보는 지해원과 고하늘로 압축됐다.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하는 걸까? 교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문수호로서는 조카를 추천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또, 자신의 제자였던 지해원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성순의 입장도 난처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하늘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이전에 함께 일했던 지해원에 대한 애틋함도 숨길 수 없었다.


결론은 쉽지 나지 않았다. 진로부장 박성순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려고 버텨온 사람에 대한 예의”라며 지해원을 추천했고, 교무부장 문수호도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노련한 선생님이 필요하다며 박성순과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국어과 도연우(하준)는 필기시험 1등인 고하늘을 선발하는 게 객관적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추후 감사에서 지적되지 않으려면 정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채용되지 못했다. 대치고는 적격자가 없다며 국어과 정교사 채용을 하지 않았다. 지해원은 학교를 떠나게 됐고, 고하늘은 일 년 더 학교에 머무르게 됐다. 처음에는 악연으로 얽혔다가 나중엔 선의의 라이벌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정교사 채용에는 실패했지만, 한결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아마도 그 고달픈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 한번 안아 주시면 안 돼요? 저 6년 동안 되게 힘들었는데…”


6년째 기간제 교사에 머물렀던 지해원은 점차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일부러 교장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청소하는 등 눈에 띄려 했고, 경쟁자를 의식해 음해하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건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지해원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다. tvN <블랙독>은 섬세하게 기간제 교사들의 처지에 대해 설명했고, 시청자들은 어느새 지해원을 응원하게 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떠나는 이 순간에 나는 진짜 선생님이 되었다.”


한편, 고하늘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졸업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중에 불현듯 무언가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진정한 교사란 뭘까. 졸업식과 함께 정년 퇴임을 하던 윤여화(예수정)가 남긴 질문이었다. 결국 답은 학생이었을까. “이제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라는 틀이 더 이상 나를 흔들 수 없다는 확신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고하늘은 깨달았다.


tvN <블랙독>은 ‘기간제 교사’ 고하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학교 안팎의 교육 현실을 세심하게 다뤄내고 있다. 고하늘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다양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또, 그들을 섣불리 선악의 카테고리에 넣지 않고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그려내면서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이제 한 바퀴를 돌았다. 고3은 졸업했지만, 학교는 멈추지 않는다. <블랙독>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