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미 여성참정권협회의 회원들이 1913년 5월 3일 뉴욕 여성 참정권론자 퍼레이드에서 행진하고 있다.



1872년 11월 5일은 미합중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수잔 B. 앤서니(Susan Brownell Anthony, 1820~1906)는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투표소로 가서 역사적인 투표를 했다.


때는 여성참정권이 없던 시대, 어렵사리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날 투표에 성공(!)한 뒤 동지이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1815~1902)에게 승전보를 보냈다.


“이 문제 때문에 올해 겨우내 골치가 아프게 되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지.”


수잔의 투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것은 여성참정권을 환기하면서 이를 법정에 가져갈 수 있는 방도이기도 했다. 미국 연방법원에서 여성참정권을 다루려면 이를 위반한 사건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권자 등록을 했을 때부터 체포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지만, 정작 그녀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23일 후였다. 


수잔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보안관에게 남자 범죄자처럼 수갑을 채울 것을 요구했고 기꺼이 감옥에 갇혔다. 이미 지난 30년 동안 노예해방과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워왔고 ‘여권운동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쉰두 살의 투사는 보석도 거부했지만, 헨리 R. 셀든(Henry R. Selden)이 무보수로 수잔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면서 석방됐다.






1872년 수잔 앤서니의 역사적 투표


“여성도 인간인가?


여성이 사람이라면 미국 국민이고 따라서 어떤 주 정부도 그들의 헌법상 특권과 권리를 침해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대표를 의회에 보내지도 못하면서 세금을 내야 합니다. 동의 없이 지배받으며 배심원이 되지도 못하면서 재판받고 처벌받습니다.”


보석으로 석방된 수잔은 30일 동안 여성참정권을 역설하는 29번의 연설을 이어가다 쓰러지기도 했다. 변호인 셀든은 판사의 재판을 제의했으나 수잔은 배심원 재판을 고집했다. 수잔은 양심적인 남성 배심원에게 호소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배심원 재판은 성사됐지만 ‘적법한 투표권 없이 투표한 죄(법률 제19편 위반)’로 기소된 수잔 B. 앤서니의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하지 않게’ 이뤄졌다. 수잔을 증인으로 신청해 증인 신문을 하려 했던 셀든의 계획은 수포가 됐다. 검사가 제기한 이의를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검찰이 제기한 이의는 다음과 같았다.


“수잔은 여자이기 때문에 증언할 능력이 없다.”


특별히 수잔의 재판만이 불공정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상식을 뛰어넘는 여성 차별의 논리가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1년 전, 자신이 신청한 변호사 등록을 ‘여성의 법률 업무 종사 금지법’에 따라 거부당해 소를 제기한 마이라 브래드웰(Myra Bradwell) 사건에 대한 연방법원의 판결은 참으로 엽기적이었다.


“법은 항상 남성과 여성의 활동 영역과 운명을 다르게 다뤄왔다.


……여성은 그 천성과 허약함 때문에 특정한 직업에는 맞지 않는다. ……여성의 궁극적인 운명과 임무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고귀한 임무를 충실히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입법부는 어떤 직업이나 직위를 남성에게만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있다.”


셀든은 맡은 소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수잔이 행사한 투표권은 다른 법률이 없어도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인정된다고 해석했다. 셀든은 “어떠한 주 정부도 시민의 특권과 권리를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에서 ‘시민’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지 미국에서 태어난 ‘남자’가 아니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피고인이 투표한 것이 위법하다는 유일한 이유는 피고인이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의 남동생이 투표했다면,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행동을 했다고 칭찬받았을 것입니다. 단지 여성이 했다는 이유로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범죄의 구성요건에는 행위만이 아니라 행위자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 이 사건은 피고인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 법정에 선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 헨리 R. 셀든의 ‘변론’ 중에서


그러나 최종 변론이 끝나자 연방판사 위드 헌터 재판관은 판결을 내렸다. 셀든은 배심원 투표를 주장했으나 판사는 이를 거부했다. 미국의 사법체계에서 사실관계를 다루지 않는 재판에서 배심원 평결은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판결도 그 시대의 논리를 비켜 가지 않았다.


“피고인 수잔 앤서니는 여성이고, 이 주의 헌법이 여성의 투표를 금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도 투표한 것은 법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위반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기 원칙대로 행동한 피고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으므로 그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벌금 100달러도 거부하다


재판장은 벌금 100달러와 함께 재판에 들어간 비용을 내라고 판결했다. 수잔은 이 부당한 형벌에 단돈 1달러도 낼 생각이 없다며 판결을 거부했다. 판사는 벌금을 내지 않아도 구속하지는 않겠다며 그녀를 석방했다. 인신을 구속하면 대법원에 상고해 이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가져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판사는 상징적인 벌금을 선고하는 선에서 재판을 마무리한 것이었다.


이후 수잔은 미국 전역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여성참정권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강연을 계속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연방정부의 법률은 ‘미합중국의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미국 시민인 여성에게도 같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자도 사람입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무효입니다.”


“투표권 없는 자유는 가짜일 뿐, 이 나라의 여성을 노예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남자가 있습니까?”


수잔 B. 앤서니는 매사추세츠 아담스의 퀘이커교도이자 노예폐지론자인 면직물 제조업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식들과 이웃의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학교에서 초기 교육을 받았고 뉴욕주 북부지방의 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 기소 뒤 석방된 수잔은 미국 전역을 돌며 여성참정권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강연을 계속했다.



▲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함께한 수잔 앤서니



그녀는 뉴욕주 로체스터로 이주한 가족에게 돌아와 금주운동으로 대중운동을 시작했다. 수잔은 1852년부터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 1818~1894)와 함께 여권운동에 참여했고, 여성의 옷차림을 제약하는 사회적 관습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동안 치마와 헐렁한 바지를 혼합한 ‘블루머’를 입기도 했다.


1854년부터 노예제도 반대 운동에 뛰어들어 1856년 ‘미국 노예제반대협회’의 뉴욕 대의원으로 선출된 뒤 남북전쟁(1861)이 일어날 때까지 이 협회에서 일했다. 1854년, 수잔은 스탠턴, 어니스틴 로즈(Ernestine Rose)와 함께 여성참정권과 기혼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하는 만 명의 서명을 받아 뉴욕주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노력은 1850년대 후반에 법적 측면에서 일련의 개선이 이뤄졌다.


수잔은 스탠턴과 함께 자유주의적 주간지 <혁명(The Revolution)>(1868~70)을 발행했다. 뉴욕시에서 발간된 이 신문의 모토는 “진정한 공화국이란, 남자들에겐 그들의 권리를 그리고 그 이상도 아닌, 여자들에게도 그들의 권리를, 그 이하도 아닌”이었다. 그는 또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뉴욕 근로여성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 자유주의적 주간지 <혁명(The Revolution)>(1868)



1872년 11월 5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의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수잔은 ‘미국 헌법 수정 제15조’를 제시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수정된 헌법 조항 가운데 제15조는 ‘인종에 따른 참정권 부여의 금지’, 즉 흑인 남성들의 참정권(1870)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노예 출신 흑인 남성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미국은 여전히 여성의 참정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투표에 참여한 ‘죄’로 재판에 회부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여성의 권리가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잔의 도전이 환기한 여성참정권 문제는 조금씩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수잔의 도전에 용기를 낸 버지니아 마이너라는 여성이 투표를 시도했고 이를 거부한 미주리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마이너 부부는 연방대법원까지 상고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역시 기존의 논리로 이들 부부의 상고를 기각했는데 판결문 끝에 붙인 문장이 그 변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법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지,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법이 잘못되었다면 이를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원이 할 일이 아니다. ……여성의 참정권 문제에 관한 주장은 이 판결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우드로 윌슨의 재임 기간에 투표권 획득을 위해 행진하고 있다.



수잔은 전국여성참정권협회(1869~1890)와 미국 여성참정권협회(1890~1906)를 통하여 여성참정권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탁월한 운동 조직가였던 수잔에게 스탠턴은 카리스마적인 연설가로서 최상의 동지였다.


수잔은 스탠턴과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Matilda Joslyn Gage, 1826~1898), 이다 휴스테드 하퍼(Ida Husted Harper, 1851~1931)와 함께 4권으로 된 <여성참정권의 역사(The History of Woman Suffrage)>(1881~1902)를 편찬하여 출판했다.



▲ <여성참정권의 역사(The History of Woman Suffrage)>(1881~1902)



▲ 수잔과 함께 <여성참정권의 역사>를 쓴 동지들. 왼쪽부터 하퍼, 게이지, 스탠튼



1888년 수잔은 국제여성협의회를 조직했고, 1904년에는 국제여성참정권동맹을 결성했다. 런던(1899)과 베를린(1904)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녀는 여권신장에 대한 선구적인 공헌으로 전 세계 여성의 갈채를 받았다.




여성참정권은 그의 사후 14년 만에 이뤄졌다


1902년에 동지 스탠턴이 세상을 떴고 4년 후인 1906년 3월 13일, 여성참정권을 찾지 못한 채 수잔 앤서니도 도전과 투쟁의 삶을 마감했다. 향년 86세. 그녀는 죽음이 임박해 주변에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장례식에서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계속해서 우리 목표를 추진하세요.”



▲ 수잔 앤서니를 기념하는 주화



그녀는 로체스터의 마운트 호플 묘지에 묻혔다. 초기 여권운동 지도자들 가운데 소수에 불과했던 독신으로 살았지만, 수잔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The Mother of us all)’로 불린다. 1979년 미국 정부는 수잔의 초상을 새겨 넣은 주화를 만들어 그녀의 공적을 다시 한번 기렸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수잔이 숨진 지 14년 뒤였다. 여성참정권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19번째 헌법 수정이 이뤄졌다. 수정헌법 제19조는 1919년 6월 4일에 제안돼 1920년 8월 18일에 비준됐다.



▲ 1920년 노스다코타 주지사 린 프래지어가 여성참정권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 수잔 앤서니의 묘비



▲ 수잔 B.앤서니가 살았던 자택(왼쪽 건물)과 박물관(오른쪽). 1966년 미국 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수정안의 비준도 절대 쉽지 않았다. 수잔과 스탠턴 등 선구자를 이은 활동가 집단 중 하나인 사일런트 센티널(Silent Sentinels, 침묵의 경계병)은 1917년부터 18개월 동안 백악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수정헌법 제19조는 1920년 8월 18일, 테네시주에서 36번째 비준을 마침으로써 국가 비준이 이뤄졌다. 수잔 B. 앤서니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한 1872년으로부터 48년 만이었다. ‘수잔 B. 앤서니 조항’이라고도 불리는 제19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미합중국 또는 어떤 주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2. 의회는 적절한 입법을 통하여 본 조항을 강제할 권한을 가진다.


* 이 글을 쓰면서 위키와 브리태니커 등의 백과사전을 참고했고 특히 <세상을 바꾼 법정(And the Walls Came Tumbling Down)>(마이클 리프 외, 궁리, 2006)과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이해진, 파라주니어, 2009)의 도움을 받았다.



직썰 필진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