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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떤 온라인 게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게임에서는 고가의 현금 결제 아이템을 판매한다. 해당 아이템을 구매한 사람은 당연히 더욱 편리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템에 만약 해당 아이템을 구매한 자의 가족이 계정 연동으로 희귀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나 소지한 장비의 강화 확률을 다른 플레이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여 준다는 숨겨진 옵션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게임은 아무도 즐기지 않을 것이다. 현금 결제 아이템을 구매한 사람의 특권이 복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다소 다른 문제가 된다. 그저 그만두기만 하면 되는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현실이라는 게임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입시 부정 스캔들은 ‘특권의 복제’가 선진 사회에서도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버드에서 아시아계 입학생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입학 사정 과정에서의 특례 입학 대상자 리스트를 관리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10월 2일 하버드의 입학 사정 제도 및 각종 특례 입학 대상자 리스트가 미국 민권법(공공장소 등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결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하버드의 입학 제도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하버드의 입학 제도가 문제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바로 하버드의 입학 과정에서 보여 주는 ALDCs(Athlete, Legacies, Dean’s List, and the Children of Faculty)에 대한 뚜렷한 선호 현상이 지속적인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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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은 듀크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의 하버드 입학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수행한 연구에서 드러났는데, 특히 동문 자녀(Legacies) 및 기여 입학자(Dean’s List)에 대한 선호보다 체육 부문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버드의 입학 사정 과정에서 선호하는 운동 종목, 즉 수상 폴로, 골프, 스쿼시, 조정, 라크로스, 스키 등이 미국에서 일부 백인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NCAA 통계에 의하면 이들 종목의 유색인종 대학 선수 비율은 30% 미만이다.


듀크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해당 종목의 특기생으로 하버드에 지원한 학생의 90%가 하버드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전체 지원자 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 정도에 불과한데도 전체 하버드 입학생 중 10%를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가계 소득이 연간 50만 달러(한화 약 6억 원) 이상일 확률은 연간 8만 달러(한화 약 1억 원) 미만일 확률의 두 배에 가깝다. 연 소득 8만 달러라도 미국 기준에서 전혀 빈곤층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집안 배경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이러한 고급 스포츠를 통해 대학 입학 시에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이다. 노스웨스턴대의 사회학자인 로렌 A. 리베라(Lauren A. Rivera)는 2015년 <Pedigree: How Elite Students Get Elite Jobs>라는 저서를 통해 소위 미국의 엘리트 직종(America’s Elite Professional)으로 일컬어지는 대형 로펌, 투자은행, 컨설팅펌 등에서 앞서 설명한 고급 운동종목들, 즉 아이비리그 스포츠(Ivy Reague Sports)를 중요한 교과 외 활동으로 다룬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과연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의 고교생 중 이러한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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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의 유소년 스포츠 참여 규모가 점차 감소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스포츠 시장 불균형을 확대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씽크탱크인 아스펜 인스티튜트(Aspen Institute)의 조사에 의하면, 6세부터 12세까지 미국 유소년들의 단체 스포츠 참여율은 지난 2011년 41.5%에서 2017년 37.0%로 감소했다. 특히 고가의 장비로 유명한 야구의 경우 20%가 감소해 유소년 스포츠 참여율 하락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연 가구 소득 10만 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 이상 가정의 유소년 팀 스포츠 참여율은 동일 기간 오히려 3% 상승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 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크게 확대되며 고등학교가 사실상 서열화 체제로 되돌아간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 및 지원자의 다양한 경험을 중요시하는 대입 체제가 도입되며 일반고 또는 지방의 고교생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교육의 기회들이 그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위험이 커진 것이다. 대신 이러한 체제는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자들이 드러나지 않게 그들의 특권을 복제해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결국 빈자들뿐이다.


사회 곳곳에 공정의 십자군이 깃발을 높이 들고 목청을 키운다. 그렇지만 그 깃발 중 상당수가 높아 보이는 이유는 그것마저도 어떠한 특권이라는 탑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권의 복제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그 특권을 하나하나 기본권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거리에서 나부끼는 그 수많은 깃발 중 기본권이 새겨진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녕 기본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무의미한 어떤 존재일 뿐일까.



직썰 필진 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