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도련일동에는 ‘수상한집’이라 이름 붙은 집이 있습니다. 집 이름이 수상한집이고 여기에 사는 사람도 ‘수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수상한집은 집이 집을 품고 있는 형태입니다. 3층짜리 건물이 속 안 건물을 둘러싼 형태입니다. 여러모로 ‘수상한’ 이 집은 제주 주택가 한복판에 있습니다. 대체 이곳은 어떤 공간일까요?




“감옥 나오면 누울 곳은 있어야 한다”



6월 22일 개관한 간첩조작사건 기억 공간 ‘수상한집’ ⓒ제주의소리



수상한집 속 안 작은 구옥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광보 씨 부모님이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손수 지었습니다.


강씨는 20대 초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습니다. 귀향을 위해 일본에서 착실하게 일했던 강씨는 한국에 오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습니다. 일본에 정착하기 위해 도움을 받았던 큰아버지가 일본에 거주하는 친북한계 재일동포 단체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라는 이유였습니다.


강씨는 3일 동안 심문으로 둔갑한 무차별적 폭행을 견뎌내다 별다른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가까스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는 한 달 뒤 다시 그를 불러 두 달간 고문을 받다 간신히 사회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됐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보부의 감금과 고문으로 강씨는 어렵사리 일본에서 모은 재산을 모두 잃어 공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군부 정권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정두환 정권의 보안사령부가 다시 그를 불러 고문을 가했습니다. 결국, 강씨는 간첩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7년형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노부모는 강씨가 감옥에 있을 당시 “감옥에서 나오면 그래도 누울 곳은 있어야 한다”며 집을 지었습니다. 출소 후 강씨는 노부모와 함께 살며 재심을 통해 명예 회복에 힘썼고 또 다른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놓았습니다.




왜 하필 제주에 ‘수상한집’이 생겼나?



▲ 조작 간첩으로 몰린 제주 도민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의 상당수는 제주 출신입니다. 그 이유는 제주 4·3을 계기로 일본으로 밀항한 제주도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주에는 ‘똑똑한 아이들은 일제 때 일본으로 끌려가고 남아 있던 아이들도 제주 4·3 때 일본으로 도망갔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제주 4·3으로 양민 학살이 자행되면서 집집마다 자식들, 특히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패물을 팔아 밀항선을 수배해 일본으로 내보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공권력의 압력으로 제주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조총련계는 일본 사회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서는 조총련에 가입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던 제주 출신들은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의 학비를 내주거나 만년필, 양복 등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이런 그들을 ‘일본 유학생 간첩단’ 등의 이름을 붙여 간첩으로 조작했습니다. 선물을 줬던 친척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이 됐고, 학비를 받았던 조카는 밀봉교육(북한에서 대남간첩 양성에 사용되는 교육법)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됐습니다.


그렇게 제주도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특수공작원이자 남파 간첩으로 조작돼 평생을 고문과 억울한 감옥 생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 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재일 한국 양심수 동우회’가 ‘제3회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 초 서울고법에서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에게 34번째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재심으로 무죄판결이 이어지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빼앗긴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재권력의 폭력에 깊이 상처 입은 재일동포 조작간첩 피해자 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문재인 대통령. 오사카 재일동포 간담회 격려사 중, 2019.06.27.




세계 최초 조작 간첩 피해자 기념관



▲ ‘수상한집’ 기념관 개관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조작 간접 피해자 강광보 씨와 변상철 국장



수상한집을 기획하고 건축한 변상철 지금여기에 국장은 “어느 나라도 조작 간첩 기념관은 없다. 수상한 집은 세계 최초 스파이 기념관”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주 출신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의 재심을 도와주던 변상철 국장은 제주에 있던 세월호 ‘기억공간 리본’을 보고 와서 기념관을 만들 결심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래 다른 곳에 기념관을 설립하려고 하다가 무산되자 강광보 씨가 자신의 집을 내놓았고 오마이뉴스 펀딩과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배상금 등으로 지금의 수상한집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상한집은 단순히 기념관뿐만 아니라 게스트룸, 공연장, 강의 공간, 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주에 오는 누구라도 이곳에 머물면서 한국 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목격하고 나눌 수 있습니다.


수상한집에는 특별한 암호가 있습니다. 바로 ‘717’입니다. 강광보 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2017년 7월 17일을 의미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만나는 곳. 혹시 제주에 서 숙소를 찾거나 조작간첩이 궁금하다면 제주시 도련 3길 14-4 수상한집을 찾아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유튜브에서 보기: 제주에 가면 ‘수상한 집’이 있다. 암호는 717



직썰 필진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