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1.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페미니스트야”

2. “당신, 페미니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3. 돈 벌어오라는 남편, 그래서 나갔다



ⓒ일본 TB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나는 당당하게 집안일에 대한 ‘업무분담각서’를 내밀었다. 여자들과 동거할 때는 내밀지 않던 각서를 내민 이유는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석사공부와 창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도 가사와 육아노동을 대부분 혼자 도맡아 해야만 했다.


훗날 나는 집안일을 하나도 모르는 그와 역할을 나눌 때, 항목을 세세히 적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 단어로 쉽게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청소만 해도 정리 정돈, 먼지 털기, 불필요한 물건 버리기, 청소기 먼지 통 비우기, 걸레 빨기 등으로 나뉜다. 빨래는 세탁물 모으기, 세탁기 돌리기, 널기, 걷기, 개기, 옷장에 넣기 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체적인 항목 없이 한 단어로 두루뭉술하게 정했더니, 남편이 맡은 일조차 상당 부분 내가 하는 형국이 됐다.


남편 담당인 설거지는 한겨울 눈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만 갔다. 2주 정도 지나자 집안의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꺼내 쓰게 됐고, 남편은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싱크대 안에 설거짓거리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릇에 담긴 물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남편은 그 물을 버리고 다시 그릇을 쌓았다.


혼자 살아본 적 없는 남편은 누군가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밥 먹을 그릇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희생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아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 희생을 아내인 내게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신의 배우자인 아내를 엄마처럼 여기고 있다는 현실도.




사소한 노동도 매일 하면 힘들다


▲ 2017년 육아/가사 노동을 남편과 비교한 내용 ⓒ김미정



“아빠가 밤에 여기서 뭐 먹었나 봐.”


남편이 머물렀던 자리는 여섯 살짜리 아들도 바로 알아차린다. 먹었던 그릇이나 쓰레기가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주방 한구석에 남편이 어질러놓은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찍고, 거기에 분홍색 화살표로 표시를 해서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있던 다른 장소도 둘러봤다. 역시나 정리해야 할 물건이나 쓰레기가 발견됐다. 지난 6년간 매일매일 저런 것들을 치우는 데 시간을 썼다고 생각하니 갑갑하기만 했다. 이제는 계속 이런 식으로 사진에 표시해서 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이 모르는 새 나의 노동력이 허비되는 것이 싫었다. 최소한 그가 알고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치우는 게 벅차지는 않았다. 당연하게 정리하며 살아왔다.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남편이 있던 자리마다 남겨진 쓰레기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정신적, 신체적 괴로움을 이길 수 없었다. 이제는 휴지 뭉치만 보면 남편 얼굴에 던져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남편의 문제는 ‘정리 정돈 능력’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습관화된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자기가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이 내게 떠넘겨진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제 나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내 신체 상태에 적합한 노동만을 허용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노동이 불편하다


나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심심할 때마다 집어 먹을 간식거리를 식탁 위에 늘 준비해 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가정의 모습이었다. 이런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대단한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맞벌이하면서도 일절 억울한 마음 없이 내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요리. 그 요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이의 탄생이었다.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요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육아가 전부 나의 일이 될 거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산더미 같은 일들이 몰려든다는 사실도.


지금 나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고 있다. 장보기, 냉장고 식재료 관리하기, 음식물 처리하기, 설거지 등. 요리를 최소화했지만 가족들이 먹을 것은 여전히 내가 준비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마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요리는 여자의 의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왜 이리도 힘든 걸까?



ⓒ일본 TB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여섯 살 아이에게도 나의 노동은 당연한가 보다. 언젠가 빨래를 널며 만 4세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 옷이 대부분이기도 했고 슬슬 집안일에 참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싫어, 엄마가 해야지, 엄마 일인데”라고 말하며 나를 놀리듯 짱구춤을 췄다. 충격이었다.


아이는 나와 남편을 분명 다르게 대한다. 유치원 준비물을 제대로 못 챙기면 나를 타박하고, 옷이 필요하면 내게 빨래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럴 때면 다 받아주지 않고 아빠의 역할도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성 역할 구분에 매일 놀란다. 유치원의 문화나 구조 또한 아이들에게 성 역할을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첫 유치원 가족 모임에서 나는 바느질을 했고 남편은 텃밭을 갈았다. 내게 텃밭을 선택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유치원에서 보내는 모든 문자는 남편을 배제하고 나에게만 온다. 양육자가 꼭 참석해야 하는 활동에도 나만 초대한다.


우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며 살고 있다.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해야만 하는 온갖 노동에서 남편은 슬쩍 모른 체하며 발을 뺀다. 그런데 그런 남편보다 더 싫은 건 내게 노동을 강요하는 이 사회다. 나는 노동을 선택할 수 없다.




여자와 사는 게 낫다


남자와 5년을 넘게 살아보니 의문만 한가득하다. 남자와의 동거에서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20대 초반부터 독립해 살았던 나는 두 명의 친구와 살아본 적도 있고 친여동생과도 오랜 기간 함께 살았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가사를 분담했고, 어느 한쪽이 바빠서 일방적으로 하게 되면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했다.


여자와의 동거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노동의 강도가 현저히 높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여자와 함께 살았던 경험이 무조건 편안했던 건 아니고, 생활습관이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자와 사는 것이 남자와 사는 것보다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 후 처음 겪어본 남자와의 동거에서는 게으름이 가능하지도, 용서되지도 않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 주지 않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을 깐 남편은 자신이 게으르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나는 내가 부지런하지 않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배우자와 함께 도우며 살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결혼이라면, 여자 끼리 결혼해야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며 잠깐의 글 쓰는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요즘, 날 도와주고 위로해 줄 누군가가 절실하다. 어쩌면, 나의 두 번째 배우자는 여자일 수도 있겠다.



▲ 엄마페미니즘 부너미는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글쓰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부너미



덧. ‘부너미’(결혼하고 출산한 여성들이 모여 엄마들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모임)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일상 속 페미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의 삶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렸다. 남편이 함께하는 지금, 우리 가정은 평온하다.



직썰 필진 부너미

글 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