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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에서 택시를 탄 적 있다. 역으로 가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시간이 안 맞아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살갑게 맞아주시며 남원역까지는 금방이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미터기에 할증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보았다. (시내 밖의 다른 면에 들어갈 때는 할증이 붙는 것이 맞지만, 남원역은 시내 안에 있으므로 일반 주행으로 가야 한다.) 잘해봐야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릴 때 즈음 요금 3840원을 내며 여쭤봤다.


“기사님, 할증은 왜 누르셨어요?”


기사님은 영수증이 발급돼서야 겨우 말씀하셨다.


“...지방자치세야.”


나는 살지도 않은 남원에서 지방자치세 840원을 택시기사님한테 납부했다.



택시를 잡는 손님과 함께 심야 승차 거부를 단속하는 단속원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일보



모든 택시가 이렇게 주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농간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택시의 폐단은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다. 손님을 골라 태우기 위한 승차 거부와 목적지까지 굳이 빙빙 돌아가는 주행 행위들은 비일비재하게 자행돼왔다. 승차 거부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사들은 교대 시간과 같은 사정을 들어 단속에서 벗어나기 쉽다. 이런 연유로 승차 거부 신고의 90%는 증거 불충분으로 처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기사들은 손님을 가려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차가 없는 시민이나 교통약자에게 있어서 택시는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수단이었다. 심야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택시는 상전이 됐고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시민들은 콘크리트 층처럼 견고한 수요층이 됐다.


여기에 택시 요금(서울시 기준)은 내년부로 인상이 확정됐다. 2013년에 600원이 오르고 5년 만에 다시 800원이 오른 것이다. 물가 인상에 따라 택시 요금 인상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 요금 인상 과정 모두 시민의 여론 수렴 과정은 없었다. 또다시 시민들은 근거 없는 인상을 받아들여야 하게 됐다. 과거 2013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인상안에 앞서 “시민 서비스 개선과 운수종사자 처우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첫 택시요금 인상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지만, 5년간 시민들은 인상에 따른 서비스의 개선된 모습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 나아진 것 없이 부담만 가중된 셈이다.


최근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도입에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어제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했고 여의도에선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택시가 없으니 더 일찍 출근할 수 있었다거나 칼치기가 없어져서 좋았다는 반응들이 다수였다. 파업에 대한 지지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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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도 기업의 영리 행위의 일환이므로 이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점과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분개하는 것은 택시의 개선과 자성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에 여념이 없는 작태에 대해서다. 카카오 측은 출퇴근 시간 한정과 휴일에는 카풀 금지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택시 업계는 무조건 도입 반대를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택시는 5년간 시민들에게 1,400원의 요금을 인상안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승차 거부와 칼치기를 당하고 있다.


‘카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택시에 쌓인 불만이 새로운 수요가 맞물려 이어진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임에도 택시업계는 정부의 오판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내년부터 3,800원의 기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시민 입장에선 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을 침해하는 행위와 함께,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파이를 강제적으로 축소하게 된다. 이는 기득권의 일방적인 폭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이미 시민들은 기존의 택시 행태에 대해 시민들은 적폐로 규정할 만큼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그런 적폐에 대한 해소 의지가 없다면 시민들의 시선은 계속 카풀로 고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썰 필진 BIG 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