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동아리 후배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 원고를 다듬었다. 요즘 글이 안 써져서 애꿎은 문서를 뒤적이다 찾았다. 잘난 척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 지나치게 길고 불친절한 글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부족한 테크닉이 아니라 건방진 자세가 민망했다. 당시 품었던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취직 전에 자신에 관한 고민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폼은 안 나도 살 만한 서른 살이 됐다. 꼭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진로, 직업 선택을 앞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지금까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크고 작은 강의, 강연을 들었다. 대부분 ‘훌륭한 리더가 되는 법’, ‘창의적인 인재 되기’ 같은 주제였다. 유익했지만 ‘모두가 강의에서 강조하는 가치를 열망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현 가능한가?’ 더 나아가 ‘삶에서 사회적 성공이 우선적인 가치일까?’ 등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이번 렉처(Lecture) 주제에 관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모든 이가 조직 안의 리더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 수는 없을뿐더러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 공통으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고심 끝에 택한 주제는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이다. 쉽게 말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명확한 앎,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자기 이해는 크게 두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자아실현과 올바른 관계 설정이다. 오늘은 자아실현에 관해 중점적으로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특정 직업군에 속해 살아가게 된다. 직업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노동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일할 때의 경험과 감정이 삶의 질을 상당 부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직업에 따른 소득이나 사회적 인식도 결정된다.


물론 직업을 통해서만 자아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두의 선호와 재능이 일치하지는 않을 테니까. 설령 일치한다고 해도, 이를 업으로 택했을 때의 소득이나 여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대안으로 여가를 통해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차선부터 생각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대학생인 우리에게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있다.


EBS 다큐 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5부작’ 중 ‘4부 다중지능’ 편은 눈여겨 볼만한 사례다. 이 프로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워하는 A그룹, 직업 만족도가 높은 B그룹이다.


그룹 간 차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했는지의 여부. 둘째 자기 이해의 수준. 전자는 쉽게 짐작 가능하기에 후자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이 다큐에서 등장하는 다중지능 테스트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다중지능이란 인간은 IQ 테스트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지능 외에도 여러 종류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이다. 이를 토대로 단순한 IQ 측정이 아니라 분야별 지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지능 중에는 자기 이해 지능이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그룹은 이 지능에서 차이를 보였다.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의 지능만큼이나 자기 이해 지능이 높았다. 반대로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이해 지능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높지만 이를 외면하고 부모가 권유한 직종이나 막연하게 꿈꿨던 분야를 택한 경우였다.





현실에서 중시되는 가치를 배격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융통성을 가지면서도 자기 안의 열망과 잠재력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뭘 좋아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한 탐구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넉넉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교육받고 이를 받아들였던 사람이 일의 즐거움만으로 행복하기는 확률적으로 어렵다.


자기 이해 과정을 거친 후에 삶의 큰 그림을 그려나간다면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자연히 형성되는 일관성 속에서 깊이를 확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 ‘행복한 삶’이라는 가장 좋은 선물을 할 수 있다.


이 글의 요지는 “꿈을 찾아라” 혹은 “꿈을 실현해라” 따위의 권유가 아니다. 어쩌면 중요한 건 직업으로만 대변되는 성취가 아니라 자기 이해를 토대로 얼마나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 수 있느냐의 여부일 테니까. 이 같은 이유로 자기 이해를 적극 권한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아있다.





글: 가끔 쓰는 이다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