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 속 한 장면



나는 1970년생, 개띠였어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들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학교에 충실히 다니던 효덕초등학교 4학년생이었지요. 형도 있고 누나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상 타오는 건 나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지만 타온 상장을 내놓으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쭈쭈바값도 적잖이 쥐어 주시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일도 못 나가시고 집에 누워 계셨는데 저랑 여동생이랑 놀다가 쌈박질을 좀 했어요. 꼬맹이가 울고 난리를 치니까 아버지가 버럭 하셨지요. “아버지가 다쳐서 누워 있는디 니들은 안에서 싸움질이여? 나가 놀아. 시끄러” 

우리 눈치야 빤하죠. 아버지 표정만 봐도 주먹이 날아올지 쓰다듬는 손이 내릴지. 아버지 얼굴을 보니 목침이라도 날아올 것 같더라구요. 소작농 처지에 한창 일할 것 많은 봄에 자리보전하고 계시니 그 속이 얼마나 갑갑하셨겠어요. 나는 냉큼 나가 놀고 오겠다고 했죠. 잽싸게 고무신부터 챙겼어요. 9일 전이 내 생일이라 어머니가 사 주신 신발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날은 일요일도 아니었는데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광주 시내에서 큰 일이 벌어져서 학교를 쉰다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엄한 데 가지 말고 집에 꼭 붙어 있으라고 했지만 우리가 그런 걸 신경 쓰면 애들이 아니죠. 동네 개구쟁이들이 다 모여서 청주 한씨 선산으로 갔어요. 거기서 숨바꼭질도 하고 짖궂은 놈들은 무덤에서 미끄럼도 타고 놀았지요. 그런데 우리 집 앞으로 난 도로에 트럭들이 먼지 무지하게 뿜어내면서 지나다녔어요. 거기엔 군인 아저씨들이 많이 타고 있었죠. 



ⓒ5. 18 기념재단



우리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꽤 많은 애들이 군인 아저씨라고 그랬어요.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으싸 으싸' 하는 정도 군가는 우리도 부르면서 놀았죠. 그런데 그 멋진 군인 아저씨들이 그야말로 트럭으로 지나가는 걸 보고 어떤 애들은 깡충깡충 뛰며 손 흔들기도 했어요. 이상한 건 아저씨들이 꼭 우리 아버지처럼 화난 얼굴을 하고 우릴 거들떠도 안보는 거였지만. 

그런데 갑자기 빵 빵 총소리가 온 마을을 울렸어요. 총소리만 난 게 아니라 기관총 같은 두두두두 소리도 나고 꽝 꽝 소리도 귀청을 울렸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군인 아저씨들끼리 싸움이 난 거였어요. 트럭에 실려 오던 군인들을 적으로 오해한 또 다른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러다가 여러 명이 죽어 버렸지요. 트럭에 탔던 군인들은 공수부대라고 했고 오해해서 아군에 총을 쏜 군인들은 보병학교라는 곳의 군인이라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집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놀았어요. 트럭에 탄 군인들이 다시 우리쪽으로 다가서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소리 지르면서 뛰어 놀았죠. 그때 군인 아저씨들의 얼굴을 먼발치에서 한 번이라도 봤더라면 눈치 빠른 나는 살았을지도 몰라요. 시퍼런 눈을 하고 이를 득득 갈면서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던 그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나는 친구들에게 “튀자!”고 외치고 가장 먼저 달음박질쳤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드르륵 뭔가 기분 나쁜 소리가 귓전을 때렸어요. 학교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의 반도 안되는 거리에서 군인들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죠. 드르륵 소리는 거기서 총알이 나오는 소리였어요. 우리를 쏜다! 아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뛰기 시작했죠. 그런데 내가 운이 없었어요. 고무신이 벗겨진 거죠. 맨발로라도 뛰었으면 살았을 텐데 그만 고무신을 줍겠다고 멈춰 서고 말았어요. 그리고 내 몸에는 그 무서운 M16 총탄이 열 발 가까이 틀어박히고 말았죠. 열 한 살 전재수는 그렇게 죽고 말았어요. 

이제 와 왜 쏘았냐고 묻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지금까지도 묻고 싶은 질문 하나는 있어요. 그때 날 죽인 아저씨들은 내가 뭘로 보였을까요. 열 한 살이었던 제 가슴에 십자 조준을 맞추면서 그 아저씨들은 날 뭘로 봤을까요. 내가 커 보였을까요. 어른으로 보였을까요. 그래서 그 '폭도'라는 사람들로 보였을까요. 아니면 아군끼리 치고받은 화풀이로 몇 마리 죽여도 되는 오리쯤으로 보였을까요. 

내가 들고 있던 고무신을 보면서 엄마는 정신을 잃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나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며 울었죠. 아버지는 술이라도 먹었지만 엄마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그만 4년만에 홧병으로 내 곁으로 왔어요. 그때 날 죽인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 엄마도 함께 죽인 셈이 됐죠. 

1980년 5월 24일 만 열 살 하고 9일을 더 산 광주 효덕초등학교 4학년생 전재수는 그렇게 죽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나를 죽이고 수백 명을 죽이고 그 가족들을 산 송장으로 만들었던 대머리 아저씨는 아직도 건강하네요. 나라에서 돈을 대 경호해 주고 있고요. 나라에 내야 할 돈은 수백 억인데 가진 재산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발뺌하고 있네요.




아까는 하기 싫은 질문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이 입 밖에 나와요.

나는 왜 죽었나요. 그리고 그 아저씨는 왜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는 건가요.

내가 죽은 건 엄마가 사 준 고무신을 아까워했기 때문이고, 그 아저씨가 살아 있는 건 욕을 많이 드셔서 장수하시는 건가요. 정말로 그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