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초등학생들은 한 학기에 한두 번씩 엄마에게 때가 탄 노란 깃발과 조끼를 가져다 줘야 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엄마, 내일 엄마가 녹색 어머니회 당번이래.”

전업주부였던 우리 엄마는 직장에 나가는 다른 엄마들의 부탁을 받아, 한두 번이 아닌 서너 번씩 서곤 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초등학생들은 엄마들에게 이 말을 전해야 하는 날이 있다.




녹색어머니회가 어디 소속인지는 아니?

녹색 어머니회는 교육청이나 초등학교가 아니라 각 지역 경찰서에서 시행하고 있는 봉사 제도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등하교 시 교통 정리로 어린이들의 안전 보행을 도와주는 어머니 봉사 단체이기도 하다. 올해 5월부터 전국 각지 시 단위의 지방 경찰서에서는 녹색 어머니회 및 어머니 폴리스 발대식과 간담회를 열었다. 적게는 15명, 많게는 600여 명의 회원들이 경찰서에서 감사장과 위촉장을 받았다. 서에 따라 경찰 제복과 비슷한 유니폼으로, 하늘색 셔츠와 감색 치마, 모자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 누구 녹색 어머니회가 경찰서 소속인지 알고 있었던 사람? © SNL



교통정리 단체의 관할은 경찰서인데, 활동 시행은 초등학교가 담당하고 있다. 경찰이 아니라, 교장이나 교감이 나와서 봉사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초등학교 내부에서도 자체 발대식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두 경우 모두 해당 초등학교 학생의 어머니에 한정해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자녀가 없거나 초등학생 학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녹색어머니회’로서 스쿨존 교통 정리 봉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봉사자들은 내 자녀가 있는 초등학교 앞에만 선다.




선생님, 봉사 안 하면 욕먹어야 해요?

직장인이던 내 친구 엄마는, 엄마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제 자식은 혜택 받으면서 자기는 한번도 (녹색어머니회) 안 나오네” 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활동 전반을 각 초등학교에 일임하다 보니, 봉사의 본질은 ‘우리 학교 애들이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에 맞춰졌다. 희망자에 한해 당번을 선발한다고 명시해 놓았지만, 매일 ‘우리 아이들을 지키려면’ 희망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강제적으로 서야 한다. 때문에 봉사가 자발성이 아니라 의무에 의한 당번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찰이나 교장에게 위임장을 받은 각 학교의 녹색어머니회장 어머니들은 어떻게든 당번을 찾아야 한다. 

학교는 1년에 한 번이면 된다며 자원 여부와 상관없이 전교생의 엄마들에게 의무로 맡겨버린다. 직업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당번을 서지 않으면, ‘이기적이네, 애 걱정도 안 하네, 누군 좋아서 하나, 자기만 편하자고 하네’ 욕을 먹는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가는 가운데, 녹색 어머니회 대리 당번 고용률 또한 높아지게 생겼다. 



이것이 창조경제..? © NAVER 카페글 캡쳐



아이가 네 명인 전업주부 신 씨(33)는 어린 막내 아이를 아기띠로 둘러 업고 녹색 어머니회 봉사를 하기도 했다. “차례가 돌아왔는데도 안 나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녹색 반대표님이 고생하는 상황도 생긴다.” 초등학교 교사 송 씨(40)는 “나도 초등학생 아이가 있어서, 엄마들에게 어떻게 당번을 부탁해야 할지 매번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반장이나 부반장이라도 되던 해면,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의 결원을 당연히 채워야 하는 존재가 됐다. 우리 엄마도 그들의 엄마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지고 누가 하겠느냐 눈치를 보아야 했다.



봉사는 ‘1년에 한 번’이든 ‘한 학기에 한 번’이든 여건이 되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일이다. 학교는, 봉사에 대해 하면 좋은 일이라고 가르치고, 우리 엄마들에게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



당번 학급이 연간 계획처럼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선생님, 아빠는요? 

녹색 어머니회가 다가 아니다. 어머니 폴리스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어머니 폴리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및 유괴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아동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역 경찰서와 연계하여 어머니 폴리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두 ‘어머니’일까? 왜 엄마만 애들 지킴이가 되어야 하는가? 녹색어머니회는 시행 상의 구조적인 문제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어머니’에게만 보육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름에서부터 남성은 강제 봉사에서 열외된다.

통계청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은 52%에 가까워졌다. 갈수록 전업주부가 아닌 엄마들이 늘고 있지만, 서울연구원 도시정보센터의 조사(2016.5.2.)에서는 맞벌이 가구 중 80.4%가 아내가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가정을 넘어서서 사회까지도 엄마에게 교통정리나 치안과 같은 공적 영역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 통계청



뿐만 아니라, 한부모가정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학교는 당연히 모든 학생들이 엄마와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계청 2014년 가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1천 845만 가구 중 211만 가구 이상이 한부모가정이다. 녹색 어머니는커녕 ‘어머니’조차 없는 어린이가 교실에 있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학교에서는 가끔 엄마들을 불러다가 교실 대청소를 시키곤 했다. 교실 대청소를 마치고 몸살이 난 엄마는 내일 녹색 어머니로 서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대신 나가겠다고 엄마를 말렸다. 다시 그때의 초등학생이 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 그거 안 나가도 괜찮아요. 아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