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핵심 명제는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인지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민감하고 정치적인 문제다.


이 글은 그 경계를 설정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메갈리아를 비롯해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최근의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이다.


남성으로 살다 보면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인지하긴 쉽지 않다. 차별 발언, 성적 대상화, 유리천장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했던 이 모든 것들을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이해하긴 어렵다. 물론 그 경직성조차도 남성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차별에 대한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나오는 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마찬가지다.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까지 짜냈던 용기에 사회는 언제든지 경의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이 어떤 차별을 겪고 살아가는지 몰랐을 거다. 또한, 내가 가진 차별성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라넷’과 같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아니면 나는 이런 파렴치한 사이트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여성들이 받아야 했던 피해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를 지켜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여혐’이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흔히 ‘여혐’이라는 말은 ‘여성혐오’의 줄임말로 영어인 ‘misogyny’의 번역어다. ‘miso-(싫어하다)’와 ‘-gyny(여성)’의 합성어라고 하니 ‘여성혐오’라는 번역 자체가 잘못됐다 보긴 어렵다. 영어 사전을 봐도 알 수 있는데 misogyny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사전에서 말하는 misogyny와 이를 번역한 여성혐오도 단순히 여성에 대한 혐오만을 지칭하진 않는다. misogyny는 “흔히 성차별, 적대감, 남성 우월주의, 여성 폄하, 여성에 대한 폭력, 성적 대상화를 통해 드러난다”고 명시돼 있으며 “여성에 대한 편향적 사고”나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지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되기도 한다.

misogyny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에서 소비되는 여성혐오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개인으로서 여성을 싫어하는 감정이나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SNS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저 여자 좋아하는데요.” 식의 답변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혐오가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과 차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사실 이건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misogyny는 쉬운 말로 만들어진 합성어가 아니다. 그에 비해 여성혐오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해 그 용어에 대한 성찰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혐오를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해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사고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것은 ‘단편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명료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용어에 대한 편향적 이해는 성차별에 대한 성찰이 없는 이들에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여성혐오라는 단어와 여성 혐오적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차별에 대한 의식과 고민이 일상이 되는 사회로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결국 대중을 안고 가야 하는 철학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자.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있다. 그리고 여성혐오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은 그들의 단순한 사고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단순성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단어든 그 의미는 사회적으로 정의된다. 내가 책을 냉장고라고 불러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만 하면 되듯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 용어의 단순성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작 이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사람은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라고 오해한다.


그렇다고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무작정 바꿀 순 없다. 사회적인 합의가 만들어지기엔 여성혐오라는 말이 대중에게 알려진 기간이 너무 짧다. 아직은 이 단어와 대중의 인식이 만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시간이 지나면 이 단어가 제대로 된 의미로 정착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언중의 선택이 어디를 향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바꿔보는 것? 아니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유지한 채 사회 대다수가 정확한 의미를 받아들이게 힘쓰는 것? 어느 쪽이든 사실 상관없다. 이것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다. 페미니즘의 당연한 명제에 대중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문제다.

이것이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라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지키기보다는 정확한 단어로 교체하는 건 어떨까?

여전히 여성혐오를 대체할 적절한 단어 선택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그 대체재가 효율적으로 대중 인식을 끌어낼 수 있다면 굳이 여성혐오라는 말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대체재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주 간단한 의문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