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를 비롯해 충남대, 서울여대, 그 외 많은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메갈리아’가 문제시되고 있다. 언어의 과격함이나 찬반의 여론이야 각양각색이지만 ‘여자 일베’의 분탕질이라는 요지는 공통되는 듯하다. 오해와 비난의 손가락질 속에서 메갈리아는 어디로 가는가. 지난달 30일 논쟁이 된 서울대 대나무숲의 현장을 되돌아보자.

메갈리아가 또 터졌다. 또라는 말이 부적절할지 모르겠다. 메갈리아의 활동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꾸준했으니까. 굳이 일베나 김치녀 페이지까지 갈 것도 없다. 오늘의 유머를 비롯해 네이버의 댓글 창 까지 각종 사이트에서 하루를 거르지 않고 메갈리아와 여혐혐에 대한 공격이 줄을 선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양새가 좀 더 자극적이다. 폭발 위치가 대학 대나무숲, 그것도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니까’, ‘서울대인데’ 같은 집단에 대한 섣부른 규정이 논쟁을 더 격하게 했다.





저희 과 여선배 중 한 명이 메갈인 거 같습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처음 문제가 된 게시 글 전문




‘메르스갤러리 저장소’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선배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여자들의 일베’이자 ‘남성혐오’적 페이지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선배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이라는 제보였다. 메갈리아에 대한 혐오적 시선이 전제된 제보였고, 곧 논쟁이 일었다. 메르스갤러리 저장소는 링크를 저격하며 비판했다. 댓글이 늘어감에 따라 메갈리아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답습됐다. “메갈리아나 일베나”라는 문장을 둘러싸고 격한 수식이 난무했다. 내, 외부인들이 뒤섞인 싸움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가 결국 제보 글을 내렸다.





분탕질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차단하겠습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분탕질’의 기준이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메르스갤러리 저장소의 ‘좌표찍기’와 점점 격해지는 댓글들에 대한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의 대응은 ‘분탕질은 차단’이었다. 논란을 더 부추기지는 않을까싶은 의미심장한 문장 아래로 세 개의 제보가 이어졌다. 모두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및 메갈리아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들이었다.

대나무숲 페이지가 제시한 ‘분탕질’이라는 단어는 논란의 확장을 야기했다. ‘대나무숲은 어디까지 열려있나’, ‘필터링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좌표 저격은 정당할까’, ‘비판의 수위는?’ 새로운 질문들이 애초 메갈리아에 대한 논의에 대나무숲에 대한 테러의 범위를 묻는 화두까지 더해버렸다. 그리고 겹쳐지는 화두 속에서 메갈리아는 이러나저러나 계속 고통 받는다.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 취급을 당하면서 말이다.

터져 나오는 새로운 전제들은 사건의 양상을 더 복잡하게 한다. 그러나 분탕질이 뭐니, 남에 학교에 어쩌니 하는 것들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많은 제보들이 공유하는 근거 박약의 반 메갈리아적 시선이다. 상황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느냐는 질문의 근간에도 그 인식이 깊게 관여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보자.

흥미롭게도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세 제보자는 모두 페미니즘, 혹은 남녀평등에 대한 개인적인 옹호를 밝히고 있다. 아니, 그럼 메갈리아는 저 사람들을 왜 비판하지? 라는 질문이 절로 든다. 메갈리아와 여혐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몰이해가 바로 그 질문의 안에 있다.





여혐도 남혐도 싫어하는 정상적인 성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




ⓒ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제보(1)의 전문




1번 제보자는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적 견해자들을 여혐도 남혐도 싫어하는 ‘정상인’들로 규정한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혐오라는 단어에 대한 무지가 첫 번째고, 메갈리아 활동 일반에 대한 무지가 두 번째다.

권력관계의 불평등에서 작용하는 집단적 ‘혐오’와 일상 언어로서의 감정적 혐오는 그 층위가 다르다. 여혐혐은 명백하게 전자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권력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는 어떤 식으로든 구조적 폭력을 강화하는 ‘혐오’로 수렴해왔다는 것이다. 여혐혐은 그 사회적 강화의식에 대한 돌파구지, 남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 아니다. 여혐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으니 말은 물구나무를 서 남혐이 된다.

‘여혐하는 일베’와 ‘남혐하는 메갈리아’라는 이분법에선 메갈리아의 말과 행동에 대한 무지가 돋보인다. 메갈리아가 일베의 언어 형식을 빌려왔다는 정도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화다. 생각해보자. 메갈리아 이전의 남성적 발화가 어땠는지. “찍지 마”가 아닌 “조심해”를 말해왔다. 샤넬 백은 기호품이 아니라 된장질의 상징이었고, 소라넷은 척결대상이 아니라 검색 대상이었다.

수많은 발화자들이 당연시해온 그것들에 메갈리아는 반기를 들었다. 당연함의 전제는 여혐에 대한 무의식적 동의였고, 반기의 전제는 여혐도 싫고 남혐도 싫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페미니즘이었다. 메갈리아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취급하는 제보자의 논지엔 메갈리아의 논리도, 활동도 없을 뿐이다.





페미니즘, 전 옹호합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제보(2)의 전문




메갈리아에 대한 원색적 비난의 시선을 보여준 뒤 말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옹호’는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 미안한 말이지만 ‘연애를 할 때에도 항상 여자가 갑이라는 생각’은 페미니즘적으로 실현될 필요도 없으며, 사회적으로 실현된 적도 없다.

그가 옹호한다는 페미니즘에 입각했을 때, 오히려 주목할 점은 데이트라는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여성 우대가 성관계 영역에서 어떻게 뒤집히는가이다. 또 그 모순적인 우대 속에서 약자로서 ‘배려 받는’ 폭력에 노출되어온 다수 여성들의 상황이다.

경솔한 제보를 사과하는 그의 태도를 욕보일 생각도, 그가 지금까지 가져온 연애와 사상을 멋대로 재단할 생각도 없지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기존의 남성적 발화에 안위해온 사람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섣부른 언급은 언제나 위험하다. 당신도 나도 그렇다.





젠더 스터디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면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제보(3)의 전문




그런데 3번 제보자의 말에서 그 위험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여혐혐에 의한 남성억압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엉뚱하게도 ‘가부장제가 가하는 남성억압’을 통해 부수려는 시도는 인상적이다. 페미니즘, 이토록 고상한 페미니즘이라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남성도 억압한다’라는 페미니즘적 문장으로 페미니즘의 결과물 중 하나인 여혐혐의 대전제를 부수려는 모순은 둘째로 치자. 그가 선택한 페미니즘적 남성억압의 일례들이 메갈리아 비판이라는 목적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현상은 거의 언어의 자기침몰처럼 보인다.

질문할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제보의 반복 또 반복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점은 바로 페미니즘을 이용한 중립의 포지셔닝이다. 아니 얼핏 중립적이어 보이는. 그리고 이는 세 개의 제보 글 내내 느껴온 불편함이기도 하다.





메갈리아만 영원히 고통 받는다


“… 한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여성혐오는 일베만 하는 것입니까? 여성혐오의 주체는 오로지 일베이고 그에 대한 미러링을 하는 메갈은 일베와 동급인 겁니까? 자신은 과연 여성혐오에 있어서 제3자인지? 여성혐오의 주체를 모두 일베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에 제보된 익명의 댓글 중 일부다. 댓글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선 필터링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해지지 못한 물음표 속에 불편함의 핵심은 살아있다. 여혐혐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깨지 못하는 오해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고상하다. 때문에 무의식적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인정하지 못한다. 나는 일베도 아니고 성범죄자도 아니니까 김치녀 페이지의 좋아요가 15만이 넘도록 팔짱을 풀지 않는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분통을 터뜨리자 거기에 대고 익지도 않은 페미니즘을 말한다. 의아한 광경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궁극적인 페미니즘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 언어의 필연적인 천박함을 인정한다. 방법론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딛고 있는 영역이 어딘지도 모른 채 중얼대는 중립은 고민이 아니라 고통에 가깝다. 그 고상한 옹알이 와중에 팔짱을 푼 메갈리아만 영원히 고통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