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구고신)


난 이미 죽었고, 내 발로 알아서 치워져 줄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날 치워봐라. (이수인)


비정규직의 처절한 현실과 직장인들의 전쟁 같은 삶을 그렸던 tvN 드라마 <미생> 이후로 이토록 '잔혹한' 드라마는 처음이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은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리얼리티' 면에서는 <미생>보다 오히려 한 수 위라고 생각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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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문제'라는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탓에 <미생>이 비해 대중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원작의 서사와 분위기, 게다가 싱크로율 100%의 배우들의 열연이 1, 2회를 수 놓으면서 '화제성' 면에서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물론 첫 방송부터 2.1%(닐슨코리아 기준)라는 종편 드라마로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2회는 1.9%로 다소 하락)했지만, 시청률이라는 틀만으로 <송곳>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나타내긴 역부족이다.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의 온라인 화제성 지수
(기사발생률, 댓글 반응 등 온라인의 각종 데이터를 모아 분석)에 따르면, <송곳> 25일 드라마 부문 일일 순위 1위를 기록했다. , 주간 순위에서도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 첫 회가 방송됐던 24일에 다음 소프트에서 조사한 온라인 화제성 지수에서도 점유율 95.6% <무한도전>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송곳>이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탄탄한 원작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울기엔 좀 애매한' 등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던 최규석 작가의 원작이 갖는 힘이 기반이 됐다.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작품을 만들겠다'던 김석윤 PD(드라마)는 웹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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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 2회는 중심인물이자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존재인 부진노동사무소의 구고신과 프루미 마트의 이수인(지현수) 과장에 대한 인물 탐구가 중점적으로 그려졌다. 이미 '송곳'의 길을 걷고 있는 구고신은 떼인 임금을 대신 받아주고, 쓰레기 수거 중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고군분투 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던 아버지의 인생의 유일한 자부심을 물려받은 것인지, 행여 지렁이라도 다칠까 괭이질조차 조심스럽던 엄마의 예민함을 닮은 것인지,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이수인)


한편, '지시하면 실행하는 그 익숙하고 당연한 방법' 속에서 살아가던 이수인이 '송곳'으로서의 각성을 시작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한층 더 심층적으로 다뤄졌다. 직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고하라는 정민철 부장(김희원)의 지시에 대해 "불법입니다. 전 못하겠습니다"라고 거부하면서 이수인은 '송곳' 같은 선택을 해왔던 자신의 평탄치 않았던 삶을 떠올린다.

그는 학급 전체가 쉬쉬할 때 후배를 괴롭히는 힘 센 친구와 정면으로 맞서고
,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을 거부하는 대신 차라리 매타작을 당하고 마는 인물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 인물에 투표할 것을 강요하는 사관학교의 장성에게 맞서서 다른 이들이 모두 침묵할 때 단상 위에 올라가 다음과 같은 연설을 기어코 해내고 마는 것이 바로 이수인이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 지난 3년간 뼈에 새겨질 만큼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1년 후 우리가 장교로서 병사들 앞에 섰을 때 당연히 가르쳐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만에 하나 최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에서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선거에 개입하는 일이 발생했고, 우리가 그것에 눈 감는다면 병사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어떤 말로 군의 존재 이유를 교육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침묵한다면 다음에 위법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 도리 것입니다. 안이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외쳤던 우리의 신조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할 계획입니다. 동기생 여러분, 배운 대로 행동합시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인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또 누군가에게 그렇게 가르쳐왔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 가르침은 어떤 식으로 구현되어 왔는가. 과연 우리는 그 상식을 지켜왔는가?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선뜻 답할 수 없다. <송곳> 속에는 이러한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비루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불편함 말이다.




그야말로
'사건'을 터뜨리고 학교 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이수인은 운이 좋게도(?) 다리 부상을 입어 군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퇴학을 피하기 위해 "퇴원을 최대한 늦춰 달라"는 이수인에게 군의관은 "후회 되냐"고 묻다. "후회된다. 그보다 다음에 후회할 짓을 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는 이수인에게 군의관은 뼈있는 말을 던진다.


이 친구가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보네. 당신 같은 청년이 그 모습 그대로 나이 먹게 둘 만큼 이 나라가 허술하진 않아. 몇 년만 잘 버텨봐. 어디 내놔도 손색 없을 꼰대가 되어 있을 테니까.


평소의 나였다면 혐오감을 느꼈을 만한 이야기였지만, 그 때 군의관의 말에는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내가 나를 경멸하지 않고도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때가 오리라는 희망. 조금 더러운 어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탓은 아니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위안. 장래희망란에 쓰기엔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이 위기를 잘 넘기고 나면 최선을 다해 꼰대가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송곳'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절감한 이수인은 장래희망을 '꼰대'라고 적기까지 하지만, 애초에 '송곳'인 그가 '꼰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 만무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부당한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노조에 가입한다. 매장에 나타난 점장은 자신의 지시를 거부한 이수인에게 헤드록을 걸고, 이수인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이 사건은 이수인이 '송곳'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는 묻는다
. 과연 당신은 '송곳'이 될 수 있는가? 이 드라마가 불편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잔혹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비굴하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부끄럽게도 입을 닫아야 했던 그 수많은 순간들을 말이다. 우리는 안다. 송곳이 되기는커녕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는 말에 순응하며 살았던 우리 자신의 삶을 말이다.

그렇다
. 우리는 이수인이 후배를 괴롭히는 힘 센 친구에 맞설 때, 쥐 죽은 듯 고개를 파묻고 있던 학급의 일원이었다. 부정투표를 권유하는 군대의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이수인의 등을 떠밀고, 단상 밑에서 찔끔 새어나오는 박수를 치는 동기였다. 더 끔찍한 것은 우리가 몇 마디 말로 이수인을 설득했던, 가장 교활한 형태의 체제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다.




용기 없는 우리들은 스스로
'송곳'이 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송곳' 같은 존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모두 그에게 짊어주고 뒷짐을 지고 바라본다. 몰래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척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에게 위험이 닥치게 되면 철저히 외면한다. 드라마 <송곳>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진 말자.

우리가 당장
'송곳'이 되진 못한다 할지라도, 용기 없는 겁쟁이인 우리라고 할지라도 '연대'의 힘은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각성시킬 것이다. 그 과정을 드라마 <송곳>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자. 구고신과 이수인의 만남이 본격화되는 3회와 그 두 송곳을 중심으로 형성될 '연대'가 만들어갈 변화의 모습들이 담길 앞으로의 전개가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