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10주차에 이르면 발표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조별로 자유롭게 주제를 선택해 발표하게 하고 모두와 함께 토론 시간을 갖는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한 번 다루었듯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 특히 내가 말을 아낄수록 그렇다. 처음에는 토론자로 몇 번 참여해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저 강요가 될 뿐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회자의 역할을 맡는다. 가끔은 절실히 말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꾹꾹 참는다.

지난 학기에는 어떤 학내 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도중 ‘교직원’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생과 교직원 간 소통이 중요한데,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학생들이 그에 동의하며 불친절하다, 권위적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등등 여러 불만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 반론을 제기했다. 평소 수업을 무척 성실히 듣는 S였다.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는 말을 이었다.


교직원은 학교의 어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직원 비판은 학교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잠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만큼 무척 당황스러웠다. 우선 ‘교직원=학교의 어른’이라는 등식이 낯설었다. 어른을 존중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S는 ‘순종’을 말하고 있었다. 교직원과 학생은 그처럼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으나 사회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발언이 어떻게 의미화 될지 궁금해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딱히 반론하려는 학생들이 없었다.

절반 정도는 고개를 끄덕였고, 절반 정도는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군가 “아니 그래도...” 하고 열없이 반대의사를 표했지만, S는 학교가 발전하려면 같은 구성원을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사회자로서 한 발 물러나 있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깨고, 나는 S에게 물었다.


S학생은 학생과 교직원 중 누가 갑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 학생과 저, 둘 중 누가 갑이고 을입니까?

S는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교수님이 ‘갑’입니다, 하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수도, 교직원도, 그 누구도 갑이 아닙니다.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더 기업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대학이라는 슈퍼갑 앞에서 교수나 교직원은 을도 못 되는 병, 정에 불과합니다. 저 역시 물론 그렇습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평소에 정말 하고 싶었던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대학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갑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갑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교직원이든 교수든 누구든 여러분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절대 참지 않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살아가세요.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역시나 후회를 했다. 시대가 바뀌고 학생들도 바뀌었다. 학생들에게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은 거대한 괴물과도 같다. 거기에는 교수도, 교직원도,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 특히 나와 같은 시간강사들은 더욱 그렇다. 가장 잃을 것이 없으면서도, 하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존재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괴물에 맞서 싸울 수 있다. 나는 과정생 시절 학과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도중, 학생이 가진 ‘힘’을 직접 목도한 일이 있다.

선배 강사가 맡은 교양강의가 최소정원에서 불과 몇 명이 모자라 폐강되었다. 선배는 그것을 그저 전화 한 통화로 통보 받았다. 그는 어떻게 안 될까요, 하고 말을 흐리다가 이내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그는 실직되었고, 그 학기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런데 다음날 교무처에서 놀라운 전화를 받았다. 폐강이 취소되었으니 예정대로 강의하라는 것이었다.

전말을 들어 보니, 폐강을 통보 받은 학생 몇 명이 교무처에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이 수업을 듣지 못 하면 졸업할 수 없는데 책임 질 것이냐, 하는 학생들에게 교무처 담당자는 모든 수강생의 동의서를 받아 오면 폐강을 철회하겠다고 했고, 학생들은 곧 모두에게 동의서를 받아내 강의를 되살린 것이다.






선배는 무척이나 감격했다. 우리가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과장도, 지도교수도, 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학교를 상대로 “왜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생들이다. 대학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도, 두려워해야 할 대상도 학생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생을 통제하고 검열하려는 행위가 가속화 되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영역에까지, 교수와 교직원의 손길이 미친다. 무엇을 하든 교수의 허락과 교직원의 도장이 필요하다. 내가 입학하던 십여 년 전만 해도 캠퍼스 곳곳에는 학생들의 ‘텍스트’가 있었다. 굳이 어떤 이슈가 없더라도,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본부에서 관리하는 게시판이 생겼다. 그 외의 공간에 대자보를 붙이면 불과 몇 분 만에 모두 철거된다. 규격과 양식에 맞춰 포스터를 작성해야 하고, 교직원에게 검정 도장을 받아서, 정해진 기간 동안만 부착할 수 있다. 언젠가는 다른 학과의 교수가 학생이 붙인 대자보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며 직접 뜯는 것을 보았다. 단순히 학생회의 공지사항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학생자치기구에서 부착한 자보에 손을 댈 수 있는 주체는 학생밖에 없다. 학생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나는 S가 좋은 학생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스스로를 대학의 ‘갑’으로 인식하고, 조금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갑과 을의 포지션을 정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새로운 제자들과 만났다. 수업이 끝나고 어느 학생이 내게 찾아와 보여드릴 것이 있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하고 보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메모 되어 있었다.


대학은 갑이다. 교수나 교직원을 을도 아닌 병, 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갑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여러분이다. 여러분이 나서야만 학교를 바꿀 수 있다.


그 학생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친한 친구가 지난 학기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 메모를 보여주었어요. 저희 친구들끼리 이 메모를 서로 공유하고 있어요. 꼭 뵙고 싶었어요.

뭐랄까, 당신은 틀리지 않았어요, 하고 지난 학기의 제자들이 나의 등을 두드려 주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맙습니다, 하고 간신히 한 마디를 건넸다. 의미 없는 작은 몸짓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사유는 강의실 밖으로 나가고, 언젠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의 제자들이 스스로의 가치와 가능성을 자각하고, 대학에서든, 사회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대학에서 생산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사유가, 괴물이 되어 버린 대학을 구원해낼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