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리차드 세일러(Richard Thaler).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분야의 대표적 학자이자 책 『넛지(Nudge)』의 저자.



제가 조교수였던 시절에 저는 학생들로부터 적잖은 원성을 듣곤 했습니다. 중간고사 때문이었죠. 똑똑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시험을 통해 구별하고 싶었던 저는 그 목표에 걸맞게 시험 문제를 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간의 실력을 구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했습니다. 학생들의 주요 불만은 중간고사 성적 평균이 100점 만점에 어떻게 고작 72점밖에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저는 미리 학생들에게 평균 점수는 의미가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즉, 평균 점수가 얼마나 나오든 수강생 중에서 평균 정도의 성적을 보인 학생은 B+를 받도록 했기 때문에 C 이하로 성적을 받는 학생의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학생들의 불평을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시험을 100점 만점이 아니라 137점 만점이 되도록 바꾸었습니다. 실제 이 시험은 기존 시험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학생들은 문제의 70% 정도밖에 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만점을 올렸기 때문에 평균 점수는 96점 정도가 되었고 학생들은 기뻐했습니다!

제가 137점을 만점으로 고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점수 체계는 평균 점수가 90점대가 나오도록 하고 100점 이상을 받는 학생들도 많이 배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 점수를 137점으로 나누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문제를 얼마나 풀고 몇 퍼센트를 맞췄는지를 쉽게 계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만든 뒤에 저는 학생들로부터 제 시험이 너무 어렵다는 불평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137 : 96 = 100 : 70?



경제학자의 눈으로 제 학생들의 행동을 본다면 이들은 ‘잘못된 행동(misbehaving)’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의 행동은 경제학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모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따졌을 때 137점 만점에 96점을 받은 학생은 100점 만점 시험에서 70점을 받은 학생보다 행복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두 경우 모두 정확히 시험 문제의 70%를 맞춘 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학생들은 96점을 받았을 때 더 기뻐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알려줍니다. 경제학자들은 합리적인 사람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그 어떤 요인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상관없는 요인들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상관없는 요인들이 대단히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학자들이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설정해 놓고 경제학 이론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는 이런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복잡한 계산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 즉 이콘스(Econs)라고 부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지난 일요일에 쇼핑을 할 때 배가 고팠다는 이유로 그 다음 화요일 저녁 식사에서 더 큰 사이즈의 메뉴를 주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일요일에 배가 고팠던 것은 화요일 저녁과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콘스들은 결혼 기념일이나 생일날 선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임의적인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오히려 이콘스들은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선물은 현금입니다. 현금은 받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도록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 주변의 사람들이 이콘스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러한 사실은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합리화 할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었죠. 바로 시장입니다. 이들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을 과신해 왔습니다. 시장에서는 상관없는 요인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죠. 이러한 사고 방식 때문에 경제학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오히려 피해를 봤습니다.

상관없는 요인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이 상관없는 요인들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사회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행동 경제학은 이러한 오래된 경제학의 오류를 시정하려는 분야입니다. 행동 경제학의 원리는 단순히 만점을 바꿔서 학생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퇴직 연금이 좋은 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이후에 필요한 저축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큰 문제를 겪습니다. 하지만 퇴직 연금에 자동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해두고 매년 퇴직 연금에 투자하는 돈의 액수를 늘리고 투자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작은 ‘넛지(Nutge)’를 하는 것만으로도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더 효율적인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죠.

행동 경제학자들이 나타난 것은 30여 년 정도 되었지만 행동 경제학의 원리들을 사회 문제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운 좋게도 새로운 방식의 사고 방식에 열려있는 경제학자들은 상관없어 보이는 요인들을 어떻게 적용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