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물류센터에는 일용직 근로자를 관리하는블랙리스트가 있다. 컬리가 물류 현장에서 배제하고 싶은 일용직을 지정하면, 채용 업무를 위탁받은 대행업체는 단톡방에 공유했다. 컬리는 사내 공지로 사용자로서 근태가 나쁜 근로자와 계약을 중단하기 위한 업무평가 리스트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일부 고객은 마켓컬리를 탈퇴, 앱을 삭제했다.


나는 3개월 전까지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1 7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상용직인 출고관리자로 일한 기간보다는 일용직으로 일한 기간이 길다. 어떤 형태로 일했든 퇴사자에게 옛 일터는 자기 인생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하는 경험이다. 나는 지금 그 경험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출처중앙일보, “지난 밤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내 택배엔 무슨 일이 있었나


첫째로, 컬리가 블랙리스트 운용에 관해 고객과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 둘째로, 나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몰랐으나 블랙요청서는 재직 기간에 본 적 있다. 심지어 사용하려고 시도도 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둘은 다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나쁜 관리자였을지 모른다는 부채의식이 아는 바를 고백하는 동기부여가 됐다.




급성장의 화려함, 그 뒷단에서 벌어지는 일들


컬리는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급성장한 회사다. 매출액은 2015 30억에서 2019 4290억 원으로 올랐고, 코로나로 언택트 소비가 증가한 2020년부터는 대내적으로 이미 매출 1조 원을 넘긴 유니콘으로 여긴다. 그런 컬리의 물류센터에 왜블랙리스트란 것이 존재하게 됐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화려한 성장의 뒷단에서 물류센터 실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해야 한다.


우선 컬리는 성장과정에서 지속적으로스큐(SKU, Stock Keeping Units)’란 것을 늘려왔다. SKU란 상품종류 수를 일컫는 물류 용어다. 상품 종류가 늘면 당연히 할 일이 많아지니 주문처리 난이도도 올라간다. 그런데 SKU 10이 늘었다고 단순히 난이도도 똑같이 10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위 도표의곡선처럼 SKU 10이 늘면 난이도가 20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새로 열 가지(10-SKU)의 상품이 물류센터로 납품 계약이 성사됐고 그중 아보카도가 끼어있다고 가정하자. 아보카도는 인기가 많은 과일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한 번 창고에 들어갈 때 자몽을 한두 개를 꺼낼 때 아보카도는 삼십 개를 꺼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할 수 있다.

아보카도를 한창 스무 개 정도 집었는데 그 자리에 열 개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남은 열 개를 찾아보니 손도 안 닿는 3단 랙에 보충 재고가 있다. 지게차로 물건을 내려줘야 한다. 지게차가 길목을 차지하는 시간과 공간만큼 집품작업자들의 통행에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그밖에 아보카도 하나로 인한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고, 이런 디테일들이 전체 공정의 작업 공수를 증가시킨다.


그런데 현장은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서로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컬리 물류센터에는 창고에서 꺼내온 상품을 고객별로 분배하는다스(DAS)’라는 공정이 존재한다. 나는 한 다스 직원이, 650-SKU의 상품을 분류하는 일용직을 500-SKU를 분류하는 일용직과 비교하며 물량이 1.3배밖에 안 차이 나는데 왜 작업 시간은 그보다 더디냐고 질책하는 경우도 봤다. 차이 나는 150-SKU 중 무슨 상품이 있길래 차이를 만드는지는 이미 관심 밖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무리해서 500-SKU를 처리할 시간에 650-SKU를 처리해내는 사람이일 잘 한다고 평가받는다. 속도로 서로 은근히 경쟁하고 또 그걸 부추기며내가 애들 일 좀 시킨다고 착각하는 관리자도 나타난다. 무리했을 경우 평균적으로 몇 회전 만에 근로자의 신체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지, 상품은 뒤죽박죽 오분류 되지는 않는지, 오배송으로 인한 재주문 건이 발생할 경우 일을 두 번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나름의 중요성을 갖는 사안들이 곁가지로 밀려난다.


왜 컬리 물류센터에서는 이런 불합리함들이 감수되는가? ‘빨리빨리가 최고이고, 약간 억지로 푸시됐더라도 결과적으로빨리빨리가 처리했으면 일의 큰 가지는 쳐낸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인가? 회사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도표의 민트색 점선처럼 컬리의 고객 수요는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해왔다. 언제든 예상보다 많은 주문이 들어올 수 있으니, 물류센터의 몸집은 항상 그보다 넉넉한 능력치로 확보돼야 한다. 이 능력치가 주문 처리량이고 물류 용어로캐파(CAPA, Capactiy)’라 한다. 컬리의 냉동센터의 경우도장지센터 A→F→B남양주센터남양주+김포센터순으로 이사를 다니거나 확장을 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불어난 공간에는 상품 재고를 더 확보했다.


계단식으로 뻗어있는 파란색 선은 신규센터 오픈 시기마다 물류센터의 생산시설 캐파가 비약적으로 증가함을 보여준다. 이상적으로는 생산시설 캐파만큼 실제 캐파도 따라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완전자동화를 이룬 게 아닌 이상(특히 컬리 같은 규격화가 어려운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경우) 물류센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사람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캐파는 보라색 곡선과 같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숙련도, 몸과 마음의 컨디션, 출석율이라는 변수가 존재해 수요에 못 미치는 캐파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신규센터를 오픈하면 시설 캐파도 넉넉하고 일당에 프로모션을 막 붙여 사람도 넉넉하게 뽑아 놓았으나, 일이 익숙하지가 않아 현실 캐파는 떨어질 수 있다. 이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수요에 넉넉히 대응할 수준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시설이 비좁아지는 등 달려 일하기 불편해지고 수요는 증가하니 일이 힘에 부친다. 일이 힘에 부치니 근무 신청을 해놓고노쇼를 하거나 근무 도중 이탈하는 등 출석률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출석률이 떨어지니 남은 근로자들은 더 일이 힘에 부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다가와 이제는 진짜 못 버티겠다.’ 싶을 때쯤다시 신규센터가 오픈해 처음부터 이 순환이 반복되는 식이다. 이 순환 주기에서 수요보다 못 미치는 현실 캐파가 나오는 시기, 일이 힘에 부치는 시기가 위 도표의 연보라색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들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센터 내에서 많은 이슈가 발생한다. 잔업이 늘어나 근로자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힘드니 서로 거친 말이 오가서 맘 상하고, 진짜 제대로 된 교육 없이 급히 근무에 투입되니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오출고도 늘어나는 식이다.




급성장하는 만큼 사람도빨리빨리자른다


출처경향신문마켓컬리블랙리스트진짜였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권오성 소장 페이스북


결국 내가 경험한 컬리는 코로나 시국을 맞아 급성장한 준비되지 않은 승자였다. 한 번씩 조직을 돌아보고 다져나갈 시간을 갖기보다는 그날그날 생산 마감시간을 앞당기기에도 벅찼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규모를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블랙리스트가 탄생한 것이다. ‘일이 힘에 부치는 시기를 반복해 거치면 보통평균의 사람은 비겁 해지고 나쁜 사람은 더욱 악랄 해지게 마련이다.


부끄럽지만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나는 출고관리자로 일하면서 관리자들에게 제공되는 공식적인 블랙요청서를 본 적 있다. 심지어 제출도 해봤다(다행히 승인은 안 됐다). 물론 나는 그것을 근태가 나쁜 일용직 근로자 개개인에 대한 통상적인 징계요청 서식인 줄 알았지, 누군가가 따로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는지 공유하는 단톡방이 있는지는 몰랐다.


요청서를 쓰기 전에 해당 일용직과 여러 차례 대화, 설득도 시도했다. 왜 굳이징계가 아닌블랙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신경은 쓰였지만,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는 표현은 회사가 성장하는 단계의 잡음일 뿐 뒷일은 합리적으로 처리 되리라 믿었다. 아니, 솔직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인력 관리가 힘들어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해당 근로자를 인사권자에게 알린 다음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남에게 떠넘기는데 급급했던비겁한관리자였다. 이런 비겁한 관리자가 생기는 이유는, 일용직은 상용직처럼징계위원회라는 프로세스가 보편화가 안됐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구성 됨은 한두 명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없는 어려운 사안을 여럿이 의논함을 의미한다.


징계위원회가 소집되면, 징계 요청을 한 사람도 당한 사람도 출석해 소명 기회를 갖는다. 블랙리스트는 이 의논, 소명을 생략하고 한두 명의 결재권자의 판단에 맡김으로써 관리자들을 비겁자로 만든다. 근태 나쁜 일용직 근로자가 존재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빨리빨리자르는 편법을 안 쓰고는 징계를 할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에


다음날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일용직에게징계위원회는 과한 비용이 드는 프로세스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내가 일용직이었던 시절, 컬리 냉동센터 다스(DAS) 공정에는 일용직 중 상대를 바꿔가며 사내 연애를 하는 남자 관리자가 있었다.


사내 연애 자체는 문제가 아니나, 그가 일용직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유로블랙을 먹일까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정신 나간 판단력을 보여준 것은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여자 쪽에서 먼저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센터를 냉장센터로 옮겼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의 부재는 언제든 폭력으로 변질된다. 일용직도 제대로 된 징계 프로세스와 기준은 필요하다.


출처∙YTN “마켓컬리 물류센터 근무자도 확진쿠팡 확진자와 동행


나는 인간에게도 질적인 차이가 있고 근태가 나쁜 근로자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을 물건의 질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은 반대한다. 물건에게는왜 당신과 일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무엇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는지설명하지 않는다. 물건은 불편하면 그냥 새것으로 대체하거나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사람은 다르다. 서로 얼굴을 붉힐 망정 다가가 말부터 걸어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블랙리스트는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로 이 최소한의 의무조차 다 하지 않고 타자질 몇 번으로당신은 대화가 필요 없는 존재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근로자는영문도 모르고’ ‘별안간명단에 올라 일터에서 밀려나는 것인데, 내막을 안 고객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라벨을 붙여 소모품처럼 폐기처분하는 폭력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을 세상 사람 전부는 아닐망정 많은 이가 공감할만한도덕적 감수성이라 부른다. 그래도 여전히 납득이 어려운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옳고 그름이 아닌 이익의 관점에서라도 다시 생각해 보자. 고객 이탈은 기업의 손해다. 고객이 납득 못하는 경영은 이미 실패다.


기업이 사과를 통해 논란의 파장을 줄이고 수습을 할 수 있다면, 굳이 기존 입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특히 ‘ESG경영(기업이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 구조 개선 등 사회윤리적 가치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하다는 철학을 담은 경영)’을 표방하는 컬리는 더욱 그렇다.


숙련도 차이로 인한일용직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다면 상용직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컬리가 상용직을 늘리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컬리는 코로나 시국으로 급증한 수요에 대응하며 많은 고용을 창출했다. 하지만 동시에 퇴사율도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근본적인 조직 문화를 혁신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회사에 남아 혁신적인 일을 할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고내가 아는 컬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를 쓴 최정우 뷰티앤케이 대표의 말을 빌려기억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기록은 왜곡될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위로하고 싶다.


그럼에도 내가 혹여나 생길만한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 이유는, 나의 실패와 경험이 컬리의 진정한 성공에 간접경험이 됐으면 해서다. 길든 짧든 퇴사자에게 옛 직장은 아픈 손가락이다. 컬리가 아직은 선의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고 자기반성이 가능한 합리성은 갖춘 회사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