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의 부동산 투기는 존재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부동산 투자자들은 투기세력, 건설업자들은 토건적폐로 읽힌다. 하지만 어떤 역사학자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인문학 영상 강의 플랫폼 '다물어클럽'의 <부동산연대기: 왜 한국인은 부동산에 목숨을 거는가>에 따르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시작부터 투기로 시작했고, 또 이를 통해 도시가 성장해 나갔다는 것이다.


대한제국까지 서울은 근대 도시라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개발할 돈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개발을 좀 하나 싶었는데…

일제는 조선에 돈을 쓰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 일본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낸다. 땅주인, 집주인에게 도시개발비용을 물리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렇게 도시가 개발되면 집값과 땅값이 오른다. 심지어 언론까지 활용하며 돈을 걷었다고… 일본의 이 엄청난 아이디어로 서울의 첫 도시개발이 시작된다.

천재적인 아이디어…

조선인의 한을 담았던 빈민촌 청계천


당시의 서울, 경성은 꽤 잘 나갔다. 문제는 잘사는 동네는 모두 일본인의 차지였다는 것. 그래서 한국인은 청계천에 판자촌을 짓고 살았다. 최소한 물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니.

셀로판지로 창을 가릴 수준이었다

지금 말로 판자촌이지 토막이다. 그래도 농촌보다는 살기 좋았다는 게, 당시 조선이 얼마나 극빈 상황이었는지 보여준다. 일본이 전쟁을 위한 농산물을 수탈해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해방 후, 전쟁 리셋으로 빈부 계층이 생겨나다

해방 직후 한국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건물은 무너지고, 집주인이 죽은 경우도 있었다. 그 와중에 그 땅에 먼저 건물을 짓고 땅을 확보하면 그대로 내 땅이 되는 식이었다. 물론 무허가였지만, 이걸 챙길 행정력도 없었다.

매드맥스의 시대…

그럼에도 서울의 인구는 늘었다. 농촌과 달리 서울에는 일거리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빈부격차 속, 부유층은 미군부대와 일본인들에게서 배운 중산층 문화를 이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부촌이 생기기 시작한 것.

지금의 빈부격차와는 비교가 안 된다

부촌을 제외하면 개발은커녕, 집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도시개발, 최초의 아파트단지는 미분양이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드디어 도시의 골격이 생겨난다. 그 이전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아파트가 등장한다.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박정희가 직접 테이프 커팅을 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한국인도 근대적인 주거를 살 수 있다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마포아파트는 미분양(…)이 났다. 당시 사람들에게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너무 낯설었기 때문. 마포아파트는 근대화를 이루려는 박정희의 자존심 같은 곳이었고, 박정희가 책임자에게 아파트에서 하루 자고 오는 퍼포먼스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연탄이 집안에 있는 게 불안해 미분양…

집과 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사는 곳’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빈부의 격차를 가장 여실하게 드러내는 현실은 하루이틀새 벌어진 일이 아니다.

‘부동산연대기: 왜 한국인은 부동산에 목숨을 거는가?’가 아파트를 잘 고르는 팁을 전해주는 강의는 아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좋든 싫든 부동산 담론을 놓아버릴 수 없는지, 무엇이 우리를 ‘영끌’ 담론에 가두는지 인사이트를 제공받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강의가 될 것이다.

다물어클럽에서는 300여 편, 150시간 가량의 영상 강의를 월 9900원에 제공한다. 현재 와디즈 특별 펀딩 기간으로 같은 가격에 학습지도 받을 수 있다. 인문학과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한 번 구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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