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들의 말이 결국 정책의 방향성이나 국가 운영의 철학을 함축해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고,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말에 따라 크게는 삶의 설계를 바꾸기도 한다.


김수현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은집 팔 기회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집을 팔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집을 팔았던 사람은 상당한 기회손실을 입었겠지만 김 수석의 과천 자택은 그 동안 상당한 시세차익을 거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서울에 5억 아파트 어디있냐.” 라는 질문에일산에 있다.” 라는 오묘한 대답을 했다. 그렇다. 일산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서울 외곽에서 살면 모든 일이 끝날까?


예전 NYT에서는 미국의 저소득층들이 시내의 직장까지 무려 너댓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하는 기현상을 보도한 적이 있다. 이들은 길바닥에서 낭비하는 시간 때문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상실한다. 고소득층이 안락한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때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훌륭한 수도권 광역교통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정부는 이를 더욱 윤택하게 개선할 책임이 있다. 직주근접은 시민의 삶을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바꾸기 때문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현재 경기도는 몇 안 되는 광역철도망과 철도보다 비효율적인 광역버스로 서울 통근을 책임지고 있다. GTX는 이제 A선이 한참 공사 중이나 B, C선까지 완공되려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광역교통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서울을 떠날 수 없다. 또한 더 많은 시민이 서울 외곽에서 부족한 광역교통에 의존할 수록 광역교통의 비효율성 역시 늘어난다. 통근 비용을 억제하기 위해 교통 인프라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GTX A선의 킨텍스~서울역 간 요금은 편도 3,500원 수준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일산 거주민은 서울로 통근하기 위해 매일 7,000원 정도를 소비하며, 동탄~삼성 출퇴근의 경우 8,000원 정도가 소비될 것이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2018년 중위소득은 월 220만원, 시급으로 약 9,166원 수준이다. 220만원 소득으로 서울 주택 구매가 가능할 리 없다. 즉 중위소득 임금노동자는 매일 두 시간 남짓의 시급을 순수한 기회비용으로 소모하게 된다.


여기에 교통비를 더하면 일일 약 2 5천원 가량을 순손실로 생각할 수 있다. 일 년을 이렇게 산다고 가정하면 연간 약 625만원, 십 년이면 6,250만원이다.


문제는 일본 광역교통망 수준으로 GTX 요금이 편도 8천원~1만원 수준으로 상승하게 되면 연간 순손실이 두 배 이상 상승한다. 즉 선진국 기준 1년에 1,300만원 가까운 순손실이 강요되는 것이다. 중위소득자 연봉의 1/3에서 크게는 절반이다.


서울 용산구와 서초구의 아파트단지. 연합뉴스


아무도 자기 연봉의 30% 씩을 부담하며 길에 돈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서울 월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즉 연봉의 30% 로 서울 월세를 감당하는 날은 곧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에서 청년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이 들어가 살 집을 구하는 것은 어찌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 집을 구하는 것에서 끝이 나고 여기서 월세비 또는 주담대나 전세대출 이자 상환이 시작되면 이들은 대출 + 교통비 부담으로 인해 잉여자본 축적이 아예 불가능하다. 즉 중산층으로의 성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나는 의문스럽다. ‘서울 집값 잡기주거안정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목표에 이러한 시민들의 삶에 대한 디테일이 과연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됐는가 하는 것이 말이다.


집은사는것이 아니라-것이라고 한다. 맞다고 생각한다.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고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우리나라는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이 중요한 나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집이-것이라고 한들, 그 삶에 대한 디테일을 정부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제대로 된 정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가 일본같이 직장에서 교통비 지원을 해 주는 사회도 아닌데 말이다.


국토개발은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부동산 시세는 출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든지, 아니면 지방 리저렉트를 과감하게 시행하든지, 아니면 서울 공급을 늘리든지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지켜본 결과 결국 서울권 대출 규제 및 3기 신도시 외에는 무엇인가 미래지향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인구 및 청년층 감소라는 불확실한 거시 예측에 그저 기대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면 결국 정치인의에 시민들은 천착할 수밖에 없다. 미우나 고우나 결국 정치인들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때문이다. 공격을 당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대답을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부동산 정책은 통근/교통인프라/결혼/출산/육아/공공효율성이라는 여섯 가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늘 통찰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어렵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나름 실력이 있다는 사람들이 맡아 하지 않는가.


거시이념의 시대는 끝났다. 악은 평평하고 명확하지 않고 세상은 점차 회색지대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력이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디테일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저비용 고효율 구조의 경제를 개선하려 애썼고 많은 디테일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정책 방향과 정치인의 말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


, 이는 결국 시민이 실제로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 느끼는 삶의 디테일과 고위 관료가 통계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민 집합체의 삶 간에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뜻이다. 과연 이를 메꾸려 하는 의지가 있는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어느 정치권력에도 그 의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