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매케인, 루이스, 에이브람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에티켓이 부족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이 사람의 이런 예의 없는 행동이 목적의식을 갖고 전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인의 기분에 따라 저질러지는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예시가 바로 베트남 전쟁 참전 경력이 있으며 포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모욕한 것이다. 군 경력을 상당히 명예롭게 대우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이는 대단한 결례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넘어갔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는 매케인의 고향 애리조나에서 많은 분노한 온건 보수 공화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에게 투표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고인의 배우자인 신디 매케인의 바이든 지지 성명서는 결정적이었다.


애리조나는 현재 개표가 약 98% 가량 진행된 가운데 바이든이 약 0.47%p, 1 6천표 가량 앞서 있는 상황이다. 0.6%p 미만의 득표율 차로 인해 자동 재검표 대상이나, 2000년 대선의 플로리다 같은 1천표 미만 차이가 아닌 이상 뒤집기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애리조나의 이러한 투표 결과는 주 상원 선거 결과 민주당의 마크 켈리 후보가 51.2% 로 바이든보다도 높은 득표율로 승리한 것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상원 과반 수성을 위해 필수적인 애리조나 유세에 나타나 공화당 후보인 마사 맥샐리를 돕기는 커녕 애리조나 경선에서 패배한 켈리 워드만 언급하며 되려 찬물을 끼얹었다.


즉 트럼프는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요충지마다 표를 깎아 먹는 선거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트럼프가 몇 개 주만 더 이렇게 돌아다녔더라면 민주당의 상원 과반도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트럼프의 이러한 예의 없는 행동은 조지아 주에서도 있었다. 지난 7 17일 별세한 존 루이스 전 민주당 조지아 주 하원의원의 장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루이스 의원이 단순한 민주당 하원의원 한 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존 루이스는 그 유명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동료였으며 그와 함께 60년대부터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끌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Big Six 라고 호칭한다.)


응 그거 아냐


존 루이스의 장례식에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뿐만 아니라 공화당 대통령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도 참석했다. 빌 클린턴 이전의 대통령들이 모두 사망했거나 사실상 고령으로 인해 대외 활동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를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들이 당일 직접 조의를 표한 것이다. 트럼프는 하루 늦게 추모의 메세지를 내보냈지만 의미가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들이 당파를 초월하여 인권 운동가의 뜻을 기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마지못해 하루 지각한 메세지를 내놓은 트럼프에게 루이스를 존경하는 조지아 주의 민심이 이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조지아는 남부 바이블 벨트의 핵심 지역이기는 하지만, 최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가 도시 지역을 위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공화당 후보의 낙승이 점점 어려워지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트럼프가 이 지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그것도 어렵지 않은 일들을 남들처럼만 처리했어도 조지아가 대통령으로 바이든을 지지하고 상원 선거를 결선투표까지 몰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한편 조지아에는 숨은 공신이 한 명 더 있었다. 지난 2018년 중간선거 당시 민주당 조지아 주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스테이시 에이브람스가 바로 그 인물이다.


18년 조지아 주 주지사 선거는 상당히 석연찮은 과정에서 치러졌는데, 당시 주 국무장관이자 공화당 주지사 후보였던 브라이언 켐프가 2017 7월 갑자기사이버 범죄 우려를 이유로 민주당 캠프를 조사하더니 뒤이어 약 5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를 등록 취소해 버렸던 것이다. (전형적인 미 남부의 투표 억압이다.)


결국 에이브람스는 약 5만여 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Fair Fight 2020’ 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2020년 한 해에만 조지아 주에서 소수 인종 등의 유권자들을 80만 명 가까이 등록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들은 고스란히 바이든을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앞서도 수차례 언급했지만, 기회를 잃고 절망에 빠진 미국인들의 바닥 정서를 강하게 자극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트럼프 특유의 장점들은 한때 한반도에도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며 미국 경제는 회복 일로를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위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이라면, 특히 정치 지도자라면 가져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결여돼 있음을 드러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를 마치 특유의 쿨한 태도인 양 소비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PC에 대한 반감을 트럼프 집권의 원인으로 분석하지만 그는 unPC 를 넘어 그저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는 그 어떤 정치 이념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정작 스스로의 재임 가능성에 철퇴를 날린 꼴이 됐을 뿐이다.


한편, NYT TIME 의 보도에 의하면 죽음을 앞둔 존 매케인은 지난 2018년 자신을 찾은 조셉 바이든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정치를 포기하지 말고, 꼭 이어서 하길 바랍니다.”


결국 역사도 선거도 사람의 의지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비웃는 사람은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