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페이스북(좌), 보건복지부 페이스북(우)


먼저 좌측 이미지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자. 헌법에 정교분리가 명시돼 있는 나라에서하나님의 통치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저 이미지가 국민의힘 지도부 승인을 거쳐서 게재됐다면 이명박 씨가 서울을하나님께 봉헌하던 그 때 그 시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고, 중앙청년위에서 자체적으로 게재했다면 당 거버넌스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우측 이미지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자. 방역을 성심성의껏 수행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의지가 표명된 것인지, 박능후 장관의 총선 출마용 추석 인사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뚜렷한 메세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이미지 전체에서 도드라지게 노출된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피사체 자체가 대한민국 시민들이 알고 있는방역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왜 우리의 오감을 괴롭게 하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결국 각자가 갖고 있는 그 특유의 시대착오적 스피릿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스피릿을 학습과 소통으로 수정하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에 하나님의 통치를 임하게 하겠다는 저 당찬 청년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자. 너무나 강렬한 하나님의 후광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맨 아래에자유보수정신의 대한민국이라는 글귀도 있다. 문제는 전통적인 보수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는 상호배타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하나님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둘은 동시에 이룰 수 없지만 저 불쌍한 청년은 아무 생각 없이 뿌듯해하면서 둘 모두를 적었을 터다.


실제로 국민의힘 중앙청년위라는 조직의 청년들 중 일부는 국민의힘 신보라 전 의원이 학장으로 있는 청년정치캠퍼스Q 출신들이다. 실제로 이 캠퍼스는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과 보좌진의 역할, 상임위의 실무적 기능 등 이제 7기에 이른 더불어민주당 청년정치스쿨에 못지않게 상세하고 나름 내실 있는 커리큘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커리큘럼이 아니다. 그 커리큘럼이 결국 국민의힘을 구성하고 있는 후진 스피릿 자체를 수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젊어 보이려고 억지로 아이디어를 짜내 쓴 문구라는 것들이 죄다 영락없는 DC 감성이기 때문에 먹혀 봤자 그게 그거라는 사실을 알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요새는 육군땅개같은 말은 군필 남성들끼리 술자리에서 쓰면 몰라도 정치인 또는 예비 정치인이 사용하면 당연히 비하 논란이 나오게 마련이며, 증권사까지 재직했다던 사람이 경제 대공황이 오리라 믿고 곱버스를 타다가 한강을 갈 뻔 했다고 그것을 또 진지하게 적어 놓으면 그저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야 더 나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보건복지부의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추석 방역 선언문 역시 그 메세지의 후진성은 마찬가지이다. 과한 스튜디오 조명으로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군마냥 포지셔닝한 박능후 장관은 그렇다손 치고, 열심히 방역의주역으로 치켜세우던 의료 인력은 어디 갔느냐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메세지라는 것은 그 톤과 메세지의 송수신 대상이 항상 일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9월처럼 한 사람은카투사 편한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은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정신을....’ 운운하는 코메디를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방역이의료진을 비롯한 모두의 공이 되려면 결국 그러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를 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민주화 세대 특유의비장함이 살아 숨 쉴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시대는 거대담론의 비장함이 지배하는 때가 아니다. 각자도생의 구렁텅이로 내몰린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이 사회에서 건강한 개인의 역할은 무엇이며 과연 그 개인이 모인 코호트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과제 중 하나인 것이다.


국민의힘 중앙청년위가 보여준 비대한 자의식들과 정부의 방역 홍보문에서 나타난 지나친 비장함은 사실 그 끝과 끝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둘 모두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왜 아무리 프로세스를 갖추어도 무엇인가 해 보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저 모양에 그치는지를 잘 고민해 보아야 한다. 위원장이라는 사람이저항이 없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따위의 정치혐오적 구호나 외치고 술자리에서나 읊을 만한 인터넷 커뮤니티, 교회 주보 감성을 정치 홍보물이라는 것에 옮겨적고 있는 사람들이 뱃지를 달거나 의원을 보좌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정부는 통치 집단으로써 사회의 구조와 미래에 대한 성찰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사회는 영웅을 내세우고 그 영웅에게 모든 짐을 지워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시대가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주 가끔 영웅 또는 어떤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권위주의 정권 시절 투쟁 감정의 일시적 벅차오름 이외에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